항목 ID | GC0740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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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經濟産業 |
영어공식명칭 | Economy and Industry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정의]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과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 활동.
[개설]
영주시의 경제·산업은 소백산맥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적 특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소백산 남쪽의 낙동강 지류에는 토질이 비옥한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일찍부터 농경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다. 또 영주시는 영남지방에서 기호지방으로 통하는 죽령을 끼고 있어서, 예전부터 교통의 요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이에 20세기 이후에는 경북 북부 지역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철도를 매개로 영주시의 경제와 산업이 발전해 나갔다. 한편, 현대에는 소백산의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생산되고 있는 풍기인삼·영주사과·단산포도·순흥복숭아·부석태·영주하수오·영주한우·풍기인견 등의 특산물이 영주 지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의 중심 산업은 농업이었다. 일제는 산미증식계획 등을 통해 쌀 생산량을 증대시켜 나갔으나 오히려 과중한 소작료와 수리조합비로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풍기인삼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고대부터 풍기 지역은 산삼 자생지로 주목을 받아 왔으며, 조선시대부터 인위적인 재배가 이루어졌다. 또한, 20세기 이후에는 인삼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되면서, 영주 지역 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영주 지역의 상업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에 1914년 순흥시장이 형성되어 산간 오지 시장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1919년에는 소천[부석]시장, 1933년에는 단산[옥산]시장, 1941년에는 우시장이 형성되었다. 이 우시장은 1965년에 영주공설시장으로 등록되어 오늘날까지 재래시장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50~1960년대]
해방 이후 영주 지역에는 북한에서 월남한 주민들에 의해 직물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월남한 주민들은 재래식 목제 베틀을 개량하여, 발과 손을 동시에 움직이는 수족기로 이른바 가내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공장을 설립하였다. 특히 1954~1957년 사이 직물산업은 풍기 지역을 중심으로 장족의 발전을 거두게 된다. 해방 이후 영주 지역 산업을 이끌던 직물산업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동력에 의한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되면서 소규모 업체는 쇠퇴해 갔다. 그러한 가운데 1965년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다가 이주해 온 구 기성산업사 박정학 대표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동력기 100여 대를 영주 지역 산업 현장에 설치함으로써, 직물산업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이에 영주 지역에서도 광폭 직물의 생산이 가능해져 우리나라 직물산업이 내수에서 수출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크게 일조하게 된다.
한편, 영주의 산간 지역은 한서차가 심하고 일조가 짧으며, 봄가을도 짧아 담배 재배의 적지였다. 1967년 5월 영주연초제조창이 기공하여,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1970~1980년대]
1970년대까지 국내 총생산액의 20% 이상을 차지하던 농림어업의 비중은 급격한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지속해서 감소하였다. 또한, 1980년대 초반부터 농기계 보급이 확산하면서 가축은 역축(役畜) 기능이 사라지고 육용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축산업의 사육환경도 대규모로 변모하여 농가 소득에 이바지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영주 지역은 경북 북부의 거점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철도교통 시대인 1980년대까지 영주는 소백·태백산권의 교육·경제·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후 철도 이용률의 저하로 교통 중심권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거기다 강원·태백권의 광산업이 퇴조하면서 배후 물류공급 기지의 역할은 약화되어 갔다. 산업구조 또한 2차 산업인 광공업은 경북 전체의 평균에 못 미치는 데 반해, 서비스 산업은 경북 평균을 훨씬 웃도는 구조적인 불균형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정부는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92~2001]을 통해 균형 발전을 모색하게 된다. 영주 지역에는 대구-영주[풍기]-춘천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공업입지 수요가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1988년 6월 30일 영주가흥일반산업단지 설립을 시작으로 1990년대부터 단계적인 산업단지 조성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2019년 현재까지 영주 지역에는 모두 11개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는데,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총면적은 210만 6000㎡, 입주업체 수는 129개이며, 가동업체는 127개[가동률 98%]이다. 종업원 수는 3,144명, 생산액은 1조 7202억 원, 수출액은 9억 8648만 달러에 달한다. 농공단지[6개 단지]의 경우 총면적은 134만 3000㎡이며, 입주업체는 80개 업체[가동업체 78개], 종업원 2,207명, 생산액은 1조 5968억 원, 수출액은 12억 7978만 달러로 영주 지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공업의 발달과 달리 농업은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로 대표되는 수입 개방화 정책에 따라 급속도로 침체되어 갔다. 이에 농업인들은 벼농사보다는 소득이 높은 특수작물 재배를 통해 농가 소득 증가를 도모하게 된다. 특히 영주 지역에서는 소백산이라는 청정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사과 재배가 확산되어 갔다. 이에 영주 지역은 우리나라 최대의 사과 산지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2006년 무렵에는 47만 7000달러의 수출 실적도 내기도 하였다.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이후 영주 지역에서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부응하는 기업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기업체로는 동양 최대의 알루미늄 공장인 노벨리스코리아 영주공장, 역시 동양 최대의 담배공장인 KT&G 영주공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수소재 생산 회사인 SK머티리얼즈가 있다.
영주 지역의 유통은 2005년까지 대부분 재래시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6년 이후부터는 할인점·대형마트가 설립되면서 유통 환경도 크게 변모해 갔다. 한편, 국민의 소득 증가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맞추어 영주 지역에서는 관광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특히 소백산국립공원을 비롯한 자연관광자원, 부석사·영주 소수서원 등의 인문관광자원, 다양한 특산물은 향후 영주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