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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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休川三洞漢陽趙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Hanyang Jo Clan's Collective Village in Hhyucheon3-dong |
이칭/별칭 | 방갓마을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3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한양 조씨 집성촌.
[개설]
한양조씨는 서울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 용진현[지금의 함경남도 문천과 원산 일대]에 세거해 온 토착 사족(士族)의 후예로 고려조에 조순대부첨의중서사를 지냈다.
[명칭 유래]
방갓마을은 율지(栗枝)라고도 한다. 밤갖[방갓]은 율(栗) 자와 지(枝) 자의 훈(訓)을 빌린 지명으로 ‘밤가지’, ‘밤갖’이라 부르다가 ‘방갓’이 되었다고 전한다. 영주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안동김씨가 250년 전 이곳에 이주했을 당시 마을 이름이 없어 궁금했는데 마을 뒷산[栗枝山] 한양조씨 청하공 묘 비문에 율지(栗枝)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불리어오다가 ‘율지리’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한양조씨가 영주 지역에 터를 잡은 것은 청하현감을 지낸 시조의 9세 조종(趙琮)[1444~1520]이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낙남(落南)하여 영천(榮川) 초곡(草谷)에 터를 잡은 것이 시초이다. 조종이 영주에 터를 잡은 것은 처가[평해황씨]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조종의 다섯째 아들 참의공 조형완(趙亨琬)은 안동 풍천으로 은거했는데, 조형완의 둘째 아들 수의공 조제(趙濟)[1505~1555]의 장남 조광선(趙光先)[1535~1564]이 1500년경 안동 풍천에서 영천 방갓으로 이거하여 방갓 입향조가 되었다.
[자연환경]
영주시 휴천3동 방갓마을은 서쪽으로는 영주적서농공단지, 동쪽으로는 서천과 서천을 따라 개설된 적서로를 두고 있다. 방갓마을의 강 건너 문수면 초입에는 적벽암이 있었으나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신작로가 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현황]
영주시 휴천3동 방갓마을은 1950~1960년대에는 65호에 인구 500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으며, 당시에는 한양조씨도 30여 호 가량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KT&G 영주공장과 노벨리스코리아 영주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위세가 줄어 현재 10호 정도가 살고 있으며 그중 한양조씨는 4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