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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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穴二里達城徐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Dalseong Seo Clan's Collective Village in Yonghyeol2-ri |
이칭/별칭 | 시낼마을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달성 서씨 집성촌.
[개설]
달성서씨(達城徐氏)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달성서씨의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시대 봉익대부, 판도판서에 오르고 달성군에 봉해지면서 달성에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
시낼마을은 마을 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고 하여 ‘시내마을’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시낼’로 굳어졌다고 한다. 풍천(楓川)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시낼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의령여씨가 마을을 개척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의령여씨의 외손인 달성서씨들이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크게 번성하였다는 것이다. 시낼마을에 세거하는 달성서씨의 영주 입향조는 서언신(徐彦信)이며, 좀 더 실질적인 입향조는 서언신의 아들인 서계상(徐繼祥)[?~1677]이다. 서언신은 임진왜란을 당하자 은둔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남하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송에 살 곳을 정하였다가, 다시 예천 선동(仙洞)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주의 와석(臥石)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서계상이 영주의 와석으로 들어와 둔세(遁世)의 뜻을 깃들여 그 집을 ‘선고(仙皐)’라 하고 또 ‘침석(枕石)’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영주 남쪽 시낼마을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연 이는 원천처사 서순경(徐舜卿)의 손자인 서만홍(徐萬弘)이다.
[자연환경]
영주시 평은면 용혈2리 시낼마을은 승문2리마을회관 앞을 지나 산고개를 올라 새긋재를 넘은 뒤 300m 정도 내려간 곳에 있다. 시낼마을 뒤쪽의 산은 와우산(臥愚山)이라 칭한다.
[현황]
영주시 평은면 용혈2리 시낼마을은 1960년대에는 70여 호에 500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다. 2019년에는 26여 호에 40~50여 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달성서씨이다. 마을회관과 나란히 ‘돌배게’라는 이름을 가진 침석정(枕石亭)이라는 정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