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2리 연안 김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36
한자 龍岩二里延安金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Yeonan Kim Clan's Collective Village in Yongam2-ri
이칭/별칭 화감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중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30가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에 있는 연안 김씨 집성촌.

[개설]

연안김씨(延安金氏)는 황해도 연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김섬한(金暹漢)은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냈다. 2세 김준린(金俊麟)이 대장군, 3세 김경성(金景成)이 판도판서, 4세 김우(金祐)가 문하찬성사를 지냈다.

[명칭 유래]

화감마을은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향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마을이 부근 지면보다 낮아 꽃봉오리 속과 같다 하여 가마솥 모양의 꽃봉오리 안에 자리 잡은 마을, 즉 화부동(花釜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만 『순흥읍지』에서는 ‘화부(花釜)’와 ‘용암(龍巖)’이라는 지명은 있으나 ‘화감’은 없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연안김씨가 영주 지역에에 살게 된 것은 단종 때 진용교위를 지낸 김세형(金世衡)의 때이다. 단종복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김구(金俱) 선조의 형 김잉(金仍)의 사위 성삼문(成三問)[1418~1456]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문지화를 당하자 김구가 연루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 소백산 깊숙한 곳에 숨어 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김구의 부인인 인천이씨 할머니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아들 김세형과 여종 하나를 데리고 소백산 남쪽 순흥으로 찾아와 두암(斗巖)[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후 김세형의 증손인 12세 김팔국(金八國)이 두암에서 이산면 내매로 이주하였다. 19대 김재광(金載光)이 약 200년 전 어머니를 모시고 화감에 정착한 뒤, 이어서 친척들이 옮겨와 지금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특히 화감 김부자는 경주 최부자 다음가는 큰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자연환경]

영주시 부석면 용암2리 화감마을은 부석교차로에서 봉화 방향으로 가는 길의 좁은 골짜기 안에 있다.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향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마을이 부근 지면보다 낮은 화부지형(花釜之形)이다. 앞산은 노적봉이라 부른다.

[현황]

2015년 기준으로 영주시 부석면 용암2리 화감마을에는 57가구에 110명이 거주하는데, 그중 연안김씨는 30가구 정도이다. 화감마을 가운데에는 김규수(金圭秀)[1865~1933]가 건립한 지암 종택이 있다.

[참고문헌]
  • 『영주시사』 4(영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 영주시민신문(http://www.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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