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1리 창원 황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40
한자 白一里昌原黃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Changwon Hwang Clan's Collective Village in Baek1-ri
이칭/별칭 희여골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20여 가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에 있는 창원 황씨 집성촌.

[개설]

영주의 창원황씨(昌原黃氏)는 고려시대 의창현[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고, 황석주(黃石柱)를 중시조로 한다. 입향조는 황승후(黃承厚)로, 선대의 세거지이자 관향인 창원에서 순흥 병산으로 이거하였다.

[명칭 유래]

옛날에는 마을 주변에 억새가 많이 자랐는데, 가을이면 억새꽃이 지천으로 피어 마을이 하얗게 보였고, 밤이면 하얀 억새꽃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하얗다’, ‘희다’고 하여 ‘희여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 풍기군 서부면 백야리(白也里)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명유래에 따르면 마을 뒤에 호랑이 모양의 바위가 동서로 마주 보고 있어 그 바위의 이름을 ‘동호암’과 ‘서호암’이라 하고, 이 한 쌍의 백호가 서동부서(壻東婦西)의 형상으로 혼례식을 올렸다는 전설에 따라 백호의 백자를 따서 ‘백야리’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바위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영주 지역의 순흥, 풍기 및 봉화 문단 일대에 세거하고 있는 창원황씨는 황석주를 기준으로 하여 대상공파라고 칭한다. 창원황씨 대상공파의 영주 입향조는 황승후이다. 황승후의 후손들은 영주를 기반으로 중앙 관직에 진출하면서 가세를 키워나갔다. 이후 종사랑 황귀경(黃貴卿)의 아들 황희성(黃希星)은 희여골에 살던 고모부 노계조(盧繼祖)에게 시양자가 되어 희여골로 이거 하게 되었다. 황희성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황희성의 아들 황사우(黃士祐)[1486~1536]는 병조판서, 이조판서와 의정부우찬성을 지냈고, 그 후로 문과 9명, 사마시 34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자연환경]

영주시 풍기읍 백1리소백산 자락 남쪽의 구릉 지대에 있다. 마을 주변은 경작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논 이외에 과수원과 인삼밭이 있다.

[현황]

영주시 풍기읍 백1리 희여골마을에는 창원황씨 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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