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64
한자 安瑗
영어공식명칭 An Won
이칭/별칭 안정(安定),경질(景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46년연표보기 - 안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74년 - 안원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90년 - 안원 형조판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안원 지신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안원 유배
활동 시기/일시 1401년 - 안원 사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4년 - 안원 경상도관찰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7년 - 안원 사헌부대사헌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7년 - 안원 판한성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8년 - 안원 병마도절제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11년연표보기 - 안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22년 - 안원 용연사 제향
묘소|단소 안원 묘소 -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눌목리
사당|배향지 용연사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흥(順興)
대표 관직 형조판서|지신사|개성유후사유후|동서강등처병마도절제사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안원(安瑗)[1346~1411]은 고려 말 형조판서, 지신사 등을 지냈다. 조선 개창 후에는 개성유후사유후, 동서강등처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가계]

안원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정(安定), 시호는 경질(景質)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 안우기(安于器)[1265~1329],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안목(安牧)[1290~1360], 아버지는 정당문학 안원숭(安元崇)[1301~?], 어머니는 첨의평리를 지낸 원선지(元善之)[1281~1330]의 딸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판서 남휘주(南輝珠)[1326~1372]의 딸로 슬하에 참의 안종약(安從約)[1355~1424]을 두었다. 두 번째 부인은 영평군 윤척(尹陟)[?~1384]의 딸로, 슬하에 5남 5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감찰 안종례(安從禮), 첨추 안종의(安從義), 도정 안종렴(安從廉), 경력 안종신(安從信), 참의 안종검(安從儉)이며, 사위는 장령 김효공(金孝恭), 정언 최굉(崔宏), 이행(李行), 현감 김문(金汶), 김환(金懽)이다.

[활동 사항]

안원은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전서를 거쳐, 1390년(공양왕 2)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390년 9월 서운관에서 상소를 올려 개경의 지덕(地德)이 쇠함을 아뢰었다. 이에 공양왕은 잠시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는데, 1392년 12월에 안원의 청원으로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1392년 지신사에 임명되었으나, 이성계의 새 왕조 개창에 협조하지 않아 유배되었으며, 7월에 조선이 개창되자 본향에 안치되었다.

1394년(태조 3)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는 안원을 개성유후사유후로 임명하여, 옛 수도인 개경의 관리를 맡겼다. 이후 태조가 안원을 형조전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400년(정종 2) 개성 양온동(良醞洞)에 있던 안원의 집에 한동안 정종이 머물렀다. 1401년(태종 1) 사은사로 임명되어 판문하부사 조준(趙浚)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4년 경상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1407년 10월 사헌부대사헌에 임명되었는데, 태종의 명으로 외척 민무구(閔無咎)[?~1410], 민무질(閔無疾)[?~1410]을 탄핵하여 외방으로 유배시켰다. 1407년 12월 판한성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408년 5월에는 동서강등처병마도절제사로 부임하였다.

[묘소]

안원의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현 파주시 진서면] 눌목리 대덕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원이 사망하자 ‘경질(景質)’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의(義)로 말미암아 성취하였으므로 경(景)이라 하고, 명(名)과 실(實)이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질(質)이라 하였다. 1822년(순조 22) 지금의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 건립된 용연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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