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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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泰佐 |
영어공식명칭 | Na Tae-jwa |
이칭/별칭 | 화숙(和叔),이암(怡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출생 시기/일시 | 1700년 - 나태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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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19년 - 나태좌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24년 - 나태좌 어영병장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28년 - 나태좌 선무장군 가자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나태좌 금위영총융사 |
거주|이주지 | 나태좌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수성(壽城) |
대표 관직 | 금위영총융사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무신.
[개설]
나태좌(羅泰佐)[1700~?]는 무과 급제 후 여러 무관직을 지냈다. 경종 연간 세제(世弟)였던 영조를 호위하였고,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났을 때는 토벌에 참전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가계]
나태좌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화숙(和叔), 호는 이암(怡菴)이다. 수성나씨 영주 입향조인 증 이조참판 나이준(羅以俊)[1602~167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나재윤(羅載允), 아버지는 나필국(羅必國)이다.
[활동 사항]
나태좌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나재윤에게서 병서를 배웠으며, 1719년(숙종 45)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3년(경종 3) 금어랑에 배명되었으며, 1724년(영조 1)에는 어영병장이 되었는데, 영조가 세제로 있을 때 호위한 공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1728년 무신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안성, 죽산 등지에서 공을 세워 선무장군으로 가자되었으며, 1732년에는 숭정대부에 오르고, 금위영총융사에 배명되었다. 이후 고향인 경상도 순흥도호부 대지리(大支里)[지금의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로 낙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