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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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世頊 |
영어공식명칭 | Seong Se-uk |
이칭/별칭 | 근원(謹元),송파(松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성세욱(成世頊)[1677~1753]은 문과 급제 후 신녕현감, 병조좌랑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가계]
성세욱의 자는 근원(謹元), 호는 송파(松坡),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성안의(成安義)[1561~1629], 할아버지는 성이성(成以性)[1595~1664], 아버지는 성문하(成文夏)[1638~1726], 어머니는 이언적의 고손자인 직장 이돈(李墩)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이다. 성세욱은 3남 3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아주신씨(鵝洲申氏)이다.
[활동 사항]
성세욱은 1677년(숙종 3)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가평[지금의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서 출생하였다. 1715년(숙종 4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승문원정자, 승문원박사, 봉상시직장 등에 임명되었으며, 1723년(경종 3)에는 성균관전적과 예조좌랑을 거쳐, 신녕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724년(경종 4) 행실을 문제 삼은 헌납 김유(金濰)[1685~1748]의 탄핵으로 파직당하였다.
성세욱은 1725년(영조 1)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지만 얼마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1728년 무신난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743년(영조 19) 병좌좌랑, 종묘령에 제수되었다. 고향에서 지낼 때는 권두인, 권두경, 오광운, 유승현, 이광정 등의 명현들과 교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