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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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會宗 |
영어공식명칭 | Son Hoe-jong |
이칭/별칭 | 군해(君海),석탄(石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손회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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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3년 - 손회종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3년 - 손회종 식년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41년 - 손회종 성균관박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47년 - 손회종 자인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64년 - 손회종 공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65년 - 손회종 해남현감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67년 - 손회종 사망 |
거주|이주지 | 손회종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 |
부임|활동지 | 손회중 부임지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부임|활동지 | 손회중 부임지 - 전라남도 해남군 |
묘소|단소 | 손회중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 | 자인현감|공조정랑|해남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손회종(孫會宗)[1602~1667]은 문과 급제 후 자인현감·공조정랑·해남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계]
손회종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해(君海), 호는 석탄(石灘)이다. 아버지는 생원 손화(孫龢),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금복고(琴復古)[1549~1632]의 딸 의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진사 손흥경(孫興慶)[1543~1611], 증조할아버지는 기자전참봉을 지낸 손난(孫蘭)이다. 부인은 현감을 지낸 김경조(金慶祖)[1583~1645]의 딸 숙인 풍산김씨(豊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손회종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금복고에게 학문을 배웠다. 13세 때 고을에서 개최한 백일장에 응시하였는데, 향선생으로 백일장에 참석했던 김경조가 손회종의 재능을 보고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손회종은 1617년(광해군 9) 한양에서 소과 복시를 보려 했지만, 당시 유생들이 이이첨(李爾瞻)[1560~1623]의 사주를 받고 폐모를 청원하는 상소를 준비하자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손회종은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1633년 식년시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그러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굴욕적인 화의를 체결하자 비분강개하며 고향으로 내려왔다. 1641년(인조 19) 성균관박사에 제수되었으며, 1647년 자인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치적을 남겼지만, 부모 봉양을 위해 1650년(효종 1) 관직을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1664년(현종 5) 공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1665년에는 해남현감으로 부임하였다. 해남현에서도 치적을 남겨 고을 백성들이 청풍비(淸風碑)를 세워 주었다.
[학문과 저술]
손회종의 문집으로 2책의 『석탄집(石灘集)』이 전한다.
[묘소]
손회종의 묘소는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