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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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啓沃 |
영어공식명칭 | Hwang Gye-ok |
이칭/별칭 | 부옹(傅翁),초곡(草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지역과 연고를 가진 문신.
[개설]
황계옥(黃啓沃)[1458~1494]은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가계]
황계옥의 자는 부옹(傅翁), 호는 초곡(草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황현(黃鉉)[1369~1434], 할아버지는 생원 황중하(黃仲夏), 아버지는 선공감정을 지낸 황진손(黃震孫),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며, 부인은 윤성(尹晟)의 딸 칠원윤씨(漆原尹氏)이다. 황계옥의 평해황씨 가문은 일찍이 근기지방과 영주 지역을 오가며 사회·경제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할아버지 황중하가 영주 지역에서 생장하였고, 아버지 황진손은 용인 지역에서 성장했지만, 말년에 영주 지역으로 낙향하였다. 황계옥의 아들 황자순(黃自順) 역시 영주 지역에서 살았으며, 황계옥의 아버지와 아들의 묘소가 모두 영주 지역에 있다.
[활동 사항]
황계옥은 1472년(성종 3) 생원시에 입격하고, 1477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82년(성종 13) 홍문관정자가 되었으며, 문신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춘설금체고시제술(春雪禁體古詩製述)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표피좌자(表皮坐子)를 하사받았다. 1489년 헌납으로 정시의 참시관을 역임하고, 1490년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병으로 곧 사임하였다.
1493년(성종 24) 양전경차관으로 부적당한 인사를 뽑은 이조낭관의 추국을 주장하였다. 1494년 홍문관응교가 되었는데, 이때 회령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그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에 황계옥이 경차관으로 임명되어 진상 조사를 위해 회령으로 파견되었다. 현지로 가던 중 병이 심하여 종자(從者)가 서울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고 가다가 북청의 거산역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황계옥은 당대 문필가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황계옥이 지은 「청명일유감(淸明日有感)」은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문집으로 『초곡집(草谷集)』이 전한다.
[묘소]
황계옥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1494년(성종 25) 국왕은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황계옥을 애석하게 여겨 쌀과 콩 15석, 유둔(油芚) 3석, 회(灰) 20석, 종이 70권, 관곽(棺槨)을 하사한 뒤 치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