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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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易簡-春秋 |
영어공식명칭 | Jeongigan and Chunchu(Folkta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정이간과 춘추」 『영주시사』2에 「정이간과 춘추」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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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순흥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성격 | 설화|민담 |
주요 등장 인물 | 정이간|숙종|두 친구 |
모티프 유형 | 귀인의 도움과 정해진 운명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전하는 선비 정이간과 숙종의 이야기.
[개설]
「정이간과 춘추」 이야기에서 나오는 정이간(鄭易簡)은 숙종의 도움으로 과거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낙방하고 말았다고 한다. 숙종은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복을 입고 잠행을 자주 나갔는데 그때 만난 백성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중 글을 읽던 선비와 과거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특히 많이 전하고 있다. 「정이간과 춘추」의 주인공인 정이간은 순흥도호부의 소천리 혹은 오록리 출신이라고 하는데, 현재 소천리는 부석면으로 편제되어 있고, 오록리는 봉화군 물야면에 편입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정이간과 춘추」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정이간은 숙종 때 선비로 순흥에 살았다. 정이간은 평소 『춘추(春秋)』를 즐겨 읽었고, 시문에 뛰어났으나, 평생을 초야에 묻혀 지냈다. 정이간은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선비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많은 일화가 남아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이간이 어느 해 젊은 시절 두 친구와 함께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갔던 이야기이다.
저녁에 세 선비는 거리 구경을 나갔다. 마침 창덕궁 대궐 앞 담 밑을 거닐다가 친구들이 정이간에게 “여기는 장안에서 제일 부잣집인데, 한번 구경해볼 만할 걸세. 담을 넘겨줄 테니 자네 들어가 보게나.”라고 말하면서 목말을 태워 담을 넘겨주었다. 담을 넘은 정이간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어느 방 앞에 이르렀다. 촛불이 휘황한데 방 한편에 책이 잔뜩 쌓여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정이간은 무의식중에 방으로 들어섰는데, 책상 위엔 『춘추』가 펼쳐져 있었다.
정이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 주저앉아 소리를 내어 낭송했다. 거기는 바로 임금의 서재였다. 조금 전까지 임금이 글을 읽다가 잠시 밖에 나갔던 것이었다. 서재에 돌아온 임금은 이 무엄한 선비를 끌어내려는 좌우를 제지하고 자못 괴이한 선비의 거동에 흥미를 느껴 임금의 신분임을 감추고 인사를 나눈 뒤에 시를 짓자고 했다.
임금이 먼저 “노초충성습(露草蟲聲濕)[이슬 풀에 벌레 소리 젖고]”이라고 부르자, 정이간은 “풍지조몽위(風枝鳥夢危)[바람 부는 가지에 새의 꿈이 위태롭도다]”라며 맞받았다. 또 임금이 연꽃 그림을 가리키며 “일타서시안(一朶西施顔)[한 떨기 서시의 얼굴인데]”이라고 하자, 잇달아 정이간이 “칠규비간심(七竅比干心)[일곱 구멍은 비간의 마음이로다]”이라며 받았다. 숙종이 선비의 글재주에 감탄하여 정초지(正草紙) 한 권을 주면서 “과거시험에는 꼭 이 종이에 써서 바치라!”라고 일렀다. 그러나 정이간은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그 정초지를 친구에게 주어버렸다. 숙종이 정초지를 시권(試券)으로 한 선비를 불러 보았으나 딴 사람이었다. 임금은 다시 정이간을 불러들여 정초지를 쓰지 않은 사연을 듣고 나서 정이간에게, “정공은 과거에는 뜻을 끊고 돌아가 글이나 읽는 편이 좋겠소.”라고 했다 한다.
[모티프 분석]
「정이간과 춘추」는 귀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모티프로 한다. 숙종은 정이간 외에도 잠행을 나갔을 때 여러 선비를 도와주었는데, 배탈이 나거나 ‘솔개 연’을 ‘뱅뱅이연’이란 사투리로 대답을 잘못하여 낙방했다는 설화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