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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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봉우(金鳳友)는 1882년 지금의 익산시 목천동 목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봉우는 익산군 관동(冠洞)에 살던 이창오(李昌五) 집을 비롯한 익산 일대의 여러 촌락에서 총기를 징발하는 등 군수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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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시복(金時福)[1885~?]은 1885년 전라북도 익산군 남일면 용자포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서 1909년까지 2년 동안 전국적으로 펼쳐진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전투가 치열하였다.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전에는 한일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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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흥여(金興汝)[1889~?]는 목화상을 하다가 일제의 침탈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정판성(鄭判成)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김흥여는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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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관옥(朴寬玉)[1880~?]은 1880년 전라북도 익산군 우북면[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김경섭(金景燮)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5월 11일 밤 박관옥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익산군 우산면 동하리 이장인 강성옥(姜成玉)의 집에 뛰어들었다. 박관옥 등은 백성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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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활동한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문(朴永文)[1904~1919]은 1904년 10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영문은 3.1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금마면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4일에는 문용기(文容基)·장경춘(張京春)·박도현(朴道玄) 등이 주도한 이리 장날의 만세 시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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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영오(朴永五)[1874~?]는 1874년 전라북도 익산군 서일면 관암리에서 태어났다.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부장(部將)으로서 익산과 김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2월 24일 김시백 등 동료 4명과 함께 고산군[현재의 완주군 일대] 서면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고, 4월 7일에도 김제군 공동면[현 김제시 백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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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박이환(朴駬桓)[1873~195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윤서(朴潤瑞), 형은 박영환(朴永桓)이다. 박이환은 1873년 3월 12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25일 정읍군 태인면 종성리에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규홍(李圭弘)·문형모(文亨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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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서성군(徐成君)[1881~1909]은 1881년 익산군 우북면 치실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1909년 5월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성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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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태식(宋泰植)[1884~1946]은 1884년 12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도순리에서 태어났다. 송영식(宋永植)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1907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100여 명을 규합하여 봉기한 유지명(柳志明)의 의진에 가담하였다. 유지명 의진은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군기(軍器)를 자체적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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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양중석(楊重錫)[?~1907]은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출신으로,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중석이 속한 의병 부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익산, 강경, 여산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병들의 항일투쟁은 일본군와의 직접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집,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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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홍(李圭弘)[1881~192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의관을 지낸 이기영(李棋榮)이고, 어머니는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이규홍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박이환(朴駬桓)·문형모(文亨謨)와 함께 태인에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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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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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은거한 학자이자 애국계몽운동가. 정교(鄭喬)[1856~1925]의 본관은 하남(河南)이며 호는 추인(秋人)이다. 정교는 1856년(철종 7) 7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894년 궁내부주사를 시작으로 1895년 4월 수원부 판관을 역임하였으며, 7월에 장연군수에 임명되었으나 8월에 을미사변이 발생한 후 사임하였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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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정판성(鄭判成)[1883~?]은 1883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김흥여(金興汝)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정판성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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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조재영(趙載榮)[?~1909]은 익산 출신으로, 호는 춘파(春坡)이다. 1908년 둘째 아들인 조승호(趙承鎬)와 함께 익산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민종식(閔宗植)이 패전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조재영은 민종식 부대의 의병 40여 명을 모아 의전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익산의 이규홍(李圭弘), 임실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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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최윤보(崔允甫)[?~1909]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자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에 나섰다. 최윤보는 1909년 5월...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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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인성(姜仁聲)[1897~1930]은 1897년 1월 13일 익산군 웅포면 상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이튿날인 3월 6일에 군산 서래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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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총권(高寵權)[1867~1959]은 1867년 11월 26일 익산군 황화면 마전리[현 충청남도 논산시 황하면 마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에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과 정대원(丁大元) 등 여러 천도교인들과 함께 여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논의하여 망성면과 금마면 등의 연락 책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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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덕(金光德)[1885~1945]은 1885년 1월 14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송종석(宋宗錫)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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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김근배(金根培)[1847~191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이다. 아버지는 김현교(金顯敎)이고, 아들은 김종호(金鍾昊)이다.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지금의 익산시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옥승(曺玉承)에게서도 시문을 배웠다.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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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만순(金萬順)[1893~1966]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아버지는 구한말에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내문이다. 김만순은 1893년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장로회 소속 전킨(W. M. Junkin)[한국명 전위렴(全緯廉)] 선교사가 세운 익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남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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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수(金炳洙)[1898~1951]는 1898년 10월 18일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병수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의 권유로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가지고 1919년 2월 25일 군산으로 내려갔다. 이튿날인 2월 26일 영명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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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호(金秉鎬)[1865~?]는 1865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으로 이주해 낭산면 호암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병호는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정대원(丁大元)·이유상(李有祥)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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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덕(金龍德)[1926~1995]은 1926년 4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3월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고 전통 역사관 및 독립사상 확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등독서회는 김용덕을 비롯하여 홍환균·최규학·옥대호·노동훈·안동영·이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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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성(金龍成)[1911~1943]은 1911년 8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김제 백구면에 있는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普通學校)[현 부용초등학교] 재학 중 안영묵(安榮黙)의 영향으로 강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부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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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옥(金致玉)[1879~1927]은 1879년 10월 14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무단통치하에 감시가 엄중한 상황이던 1918년에 목사인 배은희(裵恩希)와 함께 종교인과 일반인을 규합하여 지하 독립운동 조직에 착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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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규(金漢奎)[1900~1961]는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경 김한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金振聲)을 중심으로 고정식, 이순명, 김교우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한규 등은 1920년 8월 14일 군산에서 완구용 육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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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곤(金華坤)[1899~1944]은 1899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세이소쿠영어학교]에 유학 중 일본인들에 의한 동포들의 차별과 수모를 직접 경험한 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을 결심하고 1926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귀국한 김화곤은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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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환(盧桓)[1916~1994]은 1916년 12월 13일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 교사로 재직 당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다가올 조국 독립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다가 1942년 10월 31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43년 9월 20일 일제는 유치장에 있는 노환에게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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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용기(文鏞祺)[1878~1919]의 호는 관제이며, 아버지는 문윤재이다. 문용기는 1878년 5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관음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군산의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하였고, 1907년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왓킨스학교에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하였다. 1911년 왓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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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도현(朴道玄)[1865~1919]은 1865년 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1919년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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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박병렬(朴柄烈)[1881~1940]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던 박영호이다. 미국인 선교사 맥커친(L. O. McCutchen)[한국명 마로덕(馬路德)]의 지도로 설립한 삼기면 서두리의 서두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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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복순(朴福淳)[1888~?]은 전라북도 익산군 두남면 장정리 출신으로 도기를 제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삼남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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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사국(朴士國)[1888~1934]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박기상(朴岐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박사국은 1888년 9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이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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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문(朴水文)[1897~1937]은 1897년 7월 7일 지금의 익산시 용동면 화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유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서정만(徐廷萬)·장경춘(張京春) 등의 주도로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열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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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진(朴永鎭)[1882~1928]은 185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이었던 박영진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익산교구의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을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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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배헌(裵憲)은 1896년 4월 27일 지금의 익산시 주현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여 1917년부터 1919년까지 학우회 제3대 토론부장으로 활동하며 혁명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신흥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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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규섭(邊圭燮)[1911~1945]은 1911년 3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전주고보(全州高普)를 퇴학한 이석용(李碩鎔)을 만나 조국의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청년 및 노동자 등 민중의 단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제작해서 7월 17일 금마면 장터에 게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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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석(徐載錫)[1909~1968]은 1909년 2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 학생들이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과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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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만(徐廷萬)[1889~1919]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서공유(徐公有)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현 익산시 오산면]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서정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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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선백중(宣百仲)[1890~1931]은 1890년 7월 15일 익산군 황화면[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다. 1921년 5월경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였다. 조선독립단은 홍주의병(洪州義兵),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했던 이내수(李來修)가 대동단(大同團)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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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내원(蘇來元)[1890~1967]은 1890년 7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1919년 9월에 가산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소내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리한 가산을 모두 군자금으로 내놓았고 정부 요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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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석(蘇鎭碩)[1897~1928]은 1897년 9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창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김광덕(金光德)과 송종석(宋宗錫) 등이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자 3월 28일 오후 3시경에 또다시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시장]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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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형(蘇鎭亨)[1886~1936]은 1886년 6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으로 이주하여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안종운(安鍾雲)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하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일제에 노출되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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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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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일성(宋一成)[1893~1960]은 1893년 6월 3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등과 함께 익산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논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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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석(宋宗錫)[1883~?]은 1883년 9월 6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김광덕(金光德)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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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진행(宋鎭行)[1870~?]은 1870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이석용(李錫鏞)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동료 의병들과 함께 진안군 원일면 좌산리와 창북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2년 2월 1일에는 장수군 수서면 매암리와 진전면 호병리 등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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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홍택(沈弘澤)[1909~1959]은 1909년 6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결심하였다. 심홍택은 1929년 12월 8일 강대성, 강상덕, 황한희 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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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익산 제석교회 출신의 기독교인이며, 엄병옥(嚴秉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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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칠중(嚴七仲)[1898~1961]은 1898년 1월 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간 엄칠중은 강금옥을 통해 만난 엄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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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우(劉奉祐)[1861~1947]는 1861년 7월 18일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튿날인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인 이중열(李仲悅)을 비롯한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후 최재붕(崔在鵬)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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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만(李康晩)[1921~1956년]은 1921년 5월 21일 익산군 황화면[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남도 논산군에 편입]에서 태어났다. 1941년 공주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이강만은 7월 27일 오후 7시경 친구인 영촌량부(榮村亮夫), 송본길생(松本吉生)과 함께 당시 음식점을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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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겸중(李謙重)[1912~1948]은 1912년 10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김규선(金圭鮮), 최월상(崔月上), 정재향(鄭在鄕), 고창동(高唱東), 박재선(朴在善) 등과 함께 학교 내에 공산주의연구독서회(共産主義硏究讀書會)를 조직하였다. 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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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권재(李權載)[1922~?]는 1922년 2월 1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 경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권재는 같은 학교 동기생인 송택영(宋澤永) 등과 함께 민족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을 조직하고 기관지 발행과 선전물 작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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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이기영(李琪榮)[1849~1922]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부인은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아들은 이규홍(李圭弘), 이규련(貳圭連)이다. 이기영은 1849년 7월 29일 전라북도 익산군 팔봉면 석암리[현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중추관의관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 아들 이규홍이 의진을 결성하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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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석(李秉釋)[1894~1930]은 1894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박사국(朴士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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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1927~1945]은 1927년 3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裸里農林學校) 2학년 재학 중에 동기생인 장지환·김구·김영준·호중기, 후배 서기용·김봉수·강동석·박기춘 등과 함께 비밀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선배 장이규·김직수·김환용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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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상(李有祥)[1876~1941] 1876년 6월 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상은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정대원(丁大元)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면과 용안면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이중열로부터 「독립선언서」 100매를 받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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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1889~1951]은 1889년 11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5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17년 국내에 들어왔다. 1919년 9월경 이재환은 우재룡·소진형·권영만 등과 함께 전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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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李侹)[1884~1925]은 1884년 10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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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열(李仲悅)[1869~1928]은 1869년 6월 18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좌암(佐庵)이다. 1919년 3월 1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봉우(劉奉祐)·이유상(李有祥) 등의 교인들과 함께 익산에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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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7~?]는 1897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익산에서도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당시 이형우는 용안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함라와 웅포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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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택(林榮澤)[1901년~1957]은 1901년 10월 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일제의 관립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1924년 설립되어 1946년에 국립 서울대학교로 통합] 설립 계획에 반대하여 이상재(李商在)·이승훈(李昇薰)·조만식(曺晩植)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조직한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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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혁근(林赫根)[1898~1934]은 1898년 1월 3일 익산군 익산면 마동리[현 익산시 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1월 1일 익산읍에서 조용관(趙容寬)·임종식(林宗植)·김영휘(金永輝) 등 9명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한 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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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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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진용(鄭晉容)[1893~1965]은 1893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의 계명학원(啓明學院) 교사로 일하고 있던 1932년 7월에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교육자동지회(敎育者同志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8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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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남헌(趙南憲)[1923~1996]은 1923년 1월 10일 지금의 익산시 남중동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한 뒤 송정섭(宋正燮) 등과 교류하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1월 말경에는 전주(全州)에서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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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관(趙容寬)[1885~1950]은 1885년 6월 29일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익산 지역의 3.1운동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1920년 8월 군산노동공제회(群山勞動共濟會)를 창립하였고, 1924년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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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장윤(崔長潤)[1916~1984]은 1916년 12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경에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주둔한 일본 헌병대에서 통역으로 재직 중이던 최장윤은 임시정부 화북지구 특파원인 이규학(李圭鶴)을 사형 직전에 구출하여 함께 탈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장윤은 광복군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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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건표(洪建杓)[1923~197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경중(敬中), 호는 호산(壺山)이다. 홍건표는 1923년 9월 17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복중학교 재학 중이던 홍건표는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현상(李賢相)·장의찬(張宜燦)·주낙원(朱樂元)·성익환(成益煥)·명의택(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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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갑(洪淳甲)[1896~1929]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홍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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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영섭(洪永燮)[1855~1922]은 1855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3월 2일에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 박영진(朴永鎭)은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 면의 연락 및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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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염규(黃濂奎)[1922~2003]는 1922년 1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서 태어났다. 치문학교(致文學校)[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의 치문초등학교] 교원으로 일하던 중 1943년 10월부터 1944년 2월까지 5학년 수업시간에 일제를 비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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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정환(黃廷煥)[1905~1948]은 1905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5월 16일 순종황제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중동중학(中東中學)의 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裁文)·황정환(黃廷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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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하규(黃河奎)[1921~1950]는 1921년 12월 2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43년 5월 15일에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입대한 뒤 중국 하남성(河南省) 봉구현(封丘縣)에서 광복군의 초모 공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에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