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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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조선 정부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고, 서양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필사본 회화식 채색지도책이자, 국가 주도로 제작된 전국 단위의 군현지도에 해당하는데, 영주 지역의 지도로는 「영천군지도」·「순흥부지도」·「풍기군팔면지도」가 있다.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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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가학루(駕鶴樓)는 동헌 앞에 있던 문루로 현재는 구성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영주시청 정문에서 시청로-선비로를 따라 1.6㎞ 이동 후, 세무서사거리에서 중앙로 동쪽 방면으로 320m 정도 직진한다. 왼쪽 중앙로63번길을 따라 약 200m 직진한 뒤 ‘포교당’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면 100m 뒤에 구성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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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대한제국기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2월 일본과 강제로 체결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은 안으로는 봉건사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며,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사회를 건설해야만 하는 반제 반봉건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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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경 편찬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의 읍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는 1832년(순조 32)경 경상감영에서 편찬한 도지(道誌)이다. 여기에는 당시 경상도 관내에 있던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3개 고을의 읍지가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정확한 편찬 시기나 간행 경위를 알 수 없다. 다만 내용을 토대로 편찬 시기를 유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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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찬된 경상북도 영천군의 읍지. 『경상북도영천군읍지(慶尙北道榮川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개항기 변모해 가던 영천군의 상황을 보여준다. 『경상북도영천군읍지』는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이는 역대 조선 정부의 읍지 편찬 작업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당시 조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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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75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18세기 군현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를 원본으로 삼고 있으므로 『광여도』에는 18세기 전반기의 사정이 담겨 있다. 총 7책으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은 4책에 수록하였다. 『광여도』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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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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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공원. 구성공원(龜城公園)은 철탄산에서 공원 쪽을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철탄산 쪽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구성’이라 부른다. 공원의 북쪽에 있는 불바위가 거북이의 머리이고, 가학루가 있는 곳이 등, 가학루에서 불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이 목이다. 반구정(半驅亭)과 동구대(東龜臺)가 각각 거북이의 다리 모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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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경행(權景行)[?~?]은 예안현감을 지냈으며, 좌익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영주에서 제민루 건립과 향서당 증축에 참여하였다. 권경행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권현(權顯), 할아버지는 고려 말 절의인사인 권정(權定)[1353~1411], 아버지는 보령현감을 지낸 권요(權曜)[1379~1460],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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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유선(權有善)[1528~?]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중종 연간 관직을 지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영강정(暎江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권유선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정(汝正), 호는 용담(龍潭)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권평(權評), 어머니는 달양군 서처정(徐處正)의 딸 공인 달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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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유배 온 왕자.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아들로 둘째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순흥도호부로 유배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지에서 처형당했고, 순흥도호부는 해체되었다. 금성대군의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유(瑜), 시호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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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사문(金士文)[1502~1549]은 영천군(榮川郡) 출신으로 1538년(중종 3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원주교수, 사간원정언, 형조좌랑, 울진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김사문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질부(質夫)이다. 아버지는 증 승정원좌승지 김우(金佑), 어머니는 진사 권균(權均)의 딸 증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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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시빈(金始鑌)[1684~1729]은 예조정랑·거창현감·울산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영조 즉위 초 김일경(金一鏡)[1662~1724]이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쓴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의 개찬(改撰)을 청원하였다. 김시빈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휴백(休伯), 호는 백남(白南)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金鼎輝),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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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요흠(金堯欽)[1614~1656]은 성균관박사·전라도도사·통례원봉례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요흠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흠지(欽之), 호는 괴암(乖菴)이다. 아버지는 진사 김우추(金遇秋), 어머니는 종사랑 송침(宋沉)의 딸 의인 야성송씨(冶城宋氏), 할아버지는 통덕랑 김도(金陶), 증조할아버지는 사재감참봉을 지낸 김응린(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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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정(金亻+政)[1670~1737]은 경성판관·강계도호부사·제주목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정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峰)이다. 아버지는 비변랑을 지낸 김휘봉(金輝鳳)[1643~1683],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금성휘(琴聖徽)[1622~1682]의 딸 증 숙부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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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직(金直)[1745~1817]은 성균관전적·경상도도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직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지(敬之), 호는 지애(芝厓)이다. 아버지는 김광호(金光鎬), 어머니는 통덕랑 송응현(宋應賢)의 딸 야성송씨(冶城宋氏),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수삼(金秀三), 증조할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우벽(金友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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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무신. 김진선(金振先)[?~?]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무과 급제 후 여러 외관직을 역임하였다. 김진선의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선여(善汝)이다. 아버지는 연천현감을 지낸 김호신(金虎臣)[1550~1581], 어머니는 현령을 지낸 박대수(朴大秀)의 딸 정부인 고령박씨(高靈朴氏), 할아버지는 영릉참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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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김흠조(金欽祖)[1461~1528]는 예문관봉교·제주목사·장예원판결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1506년(중종 1) 사초(史草)를 열람한 이극돈(李克墩)[1435~1503]·유자광(柳子光)[1439~1512] 등에 대한 처벌과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를 입은 김종직(金宗直)[1431~1492]·김일손(金馹孫)[1464~1498]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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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에 있는 조선시대 재사. 단운재사(丹雲齋舍)는 권경행(權景行)[1415~1484]의 묘소 관리를 위해 1484년(성종 15)경 건립되었다고 한다. 권경행의 아버지 권요(權曜)는 영천군(榮川郡) 지역의 토성 가문 출신인 민의(閔毅)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로써 권요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영주 입향조가 되었다. 권경행은 권요의 다섯째 아들로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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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를 위한 운동.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은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한 사건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한, 단종복위운동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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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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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녹(朴漉)[1542~1632]은 천거로 사근도찰방·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영주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박녹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징(子澄), 호는 취수헌(醉睡軒)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박승임(朴承任)[1517~1586], 어머니는 집의를 지낸 권오기(權五紀)[1463~?]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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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치된 조선시대 군사 통신 시설. 봉(烽)은 밤에 횃불로 서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고, 수(燧)는 낮에 나무에 불을 피워 연기로 연락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봉수조에 의하면 평소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경계에 인접하면 횃불 3개, 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면 횃불 4개, 우리나라 군사와 전쟁이 벌어지면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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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서원(書院)은 16세기 이후 지방 사림들에 의해 건립된 교육 및 교화 공간이자, 대표적인 향촌 운영 기구 중 하나였다.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선현에 대한 봉사 기능을 수행하던 사묘나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던 사학은 별도로 존재하였지만, 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서원이 처음 설립된 것은 16세기이다. 15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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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성안의(成安義)[1561~1629]는 임진왜란 당시 창녕 지역에서 창의하여 곽재우(郭再祐)[1552~1617] 의병진에 종군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창녕성씨 영주 입향조가 되었다. 성안의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익동(成翼仝),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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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국의 성씨는 중국의 영향으로 받아 나타났으나, 점차 한국 고유의 제도로서 변화해왔다. 한국의 성씨는 성과 본관은 가문, 이름은 가문의 항렬과 구별 가능한 자(字)로 구성된 특이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국가 시기에 왕족과 일부 귀족에게만 나타났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성씨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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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 일대에서 지내는 성황신에 대한 제사. 영주시 순흥 일대에서 이루어지는 순흥초군청 성황제는 ‘초군청의 성황제’라는 뜻으로 성황제의 주관자인 초군청을 덧붙인 말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질서가 무너지자 농민의 단결과 권익 보호를 위하여 김교림 참봉이 1900년대에 조직한 순흥초군청의 주관으로 성황신에게 기원하는 제사를 ‘순흥초군청 성황제’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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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는 1413년(태종 13)과 1683년(숙종 9) 두 차례에 걸쳐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까지 존속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단산면·부석면과 봉화군 봉화읍·물야면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조선 정부는 1413년(태종 13)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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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市場)이란 상품이 교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일컫는 말로, ‘장(場)’, ‘시(市)’, ‘장시(場市)’로, 현대에는 재래시장, 전통시장 등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은 개설 주기[5일 또는 10일 간격]를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가, 또는 매일 열리는가에 따라 정기시장과 상설시장으로 구분된다. 근대 이전 시장은 대개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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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10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근대교육을 배우려는 움직임과 학교 설립 운동.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요체는 ‘실력’과 ‘힘’을 길러 일본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는 언론계몽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운동, 신문학운동, 국학운동, 민족종교운동, 해외독립기지건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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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안동도회 좌통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안동도회 좌통지도(安東都會左通地圖)』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지도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을 비롯해 경상좌도 2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에 표현된 산줄기, 하천, 지명 등은 175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거의 같아 이를 원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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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안상(安瑺)[?~?]은 16세기 문신이자 음악행정가였다. 영천군수(榮川郡守) 재임 중에는 이황(李滉)[1501~1570]의 건의로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였다. 안상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해주목사를 역임한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5세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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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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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교통·통신 기관과 숙박 시설. 역(驛)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위치하여 공문서 및 군사정보 전달, 관원에 대한 숙박 제공, 역마(驛馬)의 공급, 관물(官物) 수송 등을 돕는 기관이었다. 영주 지역을 지나는 역도는 창락도(昌樂道)로 모두 4개 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院)은 역과 역 사이에 있었던 숙박 시설로 관원과 여행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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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에서 제작한 읍지와 읍사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따라 제작되었다. 이때 경상도 관내 각 고을의 읍지(邑誌)가 ‘영남읍지’라는 제목으로 합철되었으며, 여기에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3개 고을의 읍지도 수록되어 있다. 1871년 신미양요 직후 의정부에서는 군사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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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에서 제작한 읍지와 읍사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95년(고종 32) 지방행정구역 개편 직전 진행된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따라 제작되었다. 이때 경상도 관내 71개 고을 중 66개 고을의 읍지가 ‘영남읍지’라는 제목으로 합철되었으며, 여기에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3개 고을의 읍지도 수록되었다.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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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영남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는 1리 방안(方眼) 위에 각 군현을 그림으로 나타낸 지도책으로 지도의 크기는 군현의 대소(大小)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지도책에는 비변사(備邊司)의 도장이 찍혀 있어 조선 정부가 지방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영남지도』는 같이 간행된 『호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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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부터 1413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영주(榮州)는 1259년(고종 46)부터 1413년(태종 13)까지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일대를 관할하였다. 영주는 고종 연간 위사공신(衛社功臣)인 김인준(金仁俊)[김준(金俊)]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0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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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영주 지역 관할 행정기관. 영주시청(榮州市廳)은 지방자치단체인 영주시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다. 영주시청은 중앙 정부 및 광역자치단체[경상북도]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와 영주 지역 고유의 행정 및 민원 업무 수행을 위해 설립하였다. 영주시청은 조선총독부가 1914년 3월 1일 「도의위치관할구역및부군의명칭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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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영주 의산서원(榮州義山書院)은 1610년(광해군 2) 건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개립(李介立)과 김응조(金應祖)를 제향하였으나, 현재는 이개립과 이흥상(李興商)을 제향하고 있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에서 서쪽 도로로 1.8㎞가량 이동하면 갈산교가 나타난다. 갈산교를 건너기 전 갈림길에서 북쪽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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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서원.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은 1558년(명종 13) 건립된 서원으로 이황(李滉)을 제향하고 있다. 이산서원은 옛 영천군(榮川郡) 지역에서 처음 건립된 서원이자, 유일한 사액서원(賜額書院)이었다. 영주 이산서원은 이산면보건지소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다. 이전하기 전에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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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영주향교(榮州鄕校)는 조선시대 영천군(榮川郡)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하는 교육 공간이자,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이었다. 옛 영천군 지역의 유력한 재지세력(在地勢力)들은 영주향교를 출입하면서 유학을 공부하고 향사를 주관하였다. 또한, 향론을 형성하는 등 향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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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80년까지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영주군(榮州郡)은 1914년부터 1980년까지 지금 영주시 일대에 두어졌던 지방행정구역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하여,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한 방대한 국토 자료를 바탕으로 1914년 3월 1일 전국을 13도 12부 220군으로 개편하였다. 특히 기존 군의 경우 면적·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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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간행된 경상북도 영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영주군지(榮州郡誌)』는 과거 풍기군·순흥군·영천군이 영주군에 통합되자 통합 향토지 간행에 대한 요구와 함께 고전적 사료의 현대화를 위해 편찬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영주군지편찬위원회는 위원장인 영주군수 이우택(李愚澤)을 중심으로 부위원장 4명, 고문 8명, 참여 34명, 편집위원 46명,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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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편찬된 경상북도 영천군의 읍지. 『영천읍지(榮川邑誌)』는 개항기 영천군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이다. 조선 후기 영천 지역의 인적 관계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다. 『영천읍지』의 편찬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1899년(광무 3) 읍지 상송령에 의해 발간된 『영천군읍지』와 비교해 보면 구성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예를 들어 제언(堤堰) 항목에서 17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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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914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영천군(榮川郡)은 1413년(태종 13)부터 1914년까지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시내 지역과 영주시 이산면·장수면·평은면·문수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전국 군현의 읍격을 경(京)·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구분하고 이에 상응하는 관품의 외관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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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경에 편찬된 경상도 영천군의 읍지. 『영천군읍지(榮川郡邑誌)』는 1786년(정조 10)경 영천군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이다. 영조 대에 편찬된 『여지도서』를 원본으로 삼고 있으며, 후대의 변화된 모습을 반영하여 새로운 내용을 보충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관찬 읍지는 지방관 주도하에 제작되는 것이 많았다. 읍지 제작을 통해 지방관은 효율적 군현 통치를 도모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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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여은(吳汝檼)[1561~1633]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헌납, 홍문관전한 등을 지냈다. 오여은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융보(隆甫), 호는 낙애(洛厓)·벽계(碧溪)이다. 할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이며, 할머니는 안관(安灌)[1491~1593]의 딸이다. 아버지는 경주부윤을 역임한 죽유 오운(吳澐)[154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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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운(吳澐)[1540~1617]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송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운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율계(栗溪)·백암(白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석복(吳碩福)[1455~1533]으로 만년에 의령현감을 지낸 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정착하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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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이덕홍(李德弘)[1541~1596]은 학문으로 천거되어 종묘서직장·세자익위사부솔·영춘현감 등을 지냈다. 이덕홍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이다. 아버지는 흥해교수를 지낸 이충량(李忠樑), 어머니는 박승장(朴承張)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 할아버지는 훈련원습독을 지낸 이현우(李賢佑)[147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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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효자. 이천상(李天相)[1637~1708]은 효행과 학문으로 참봉에 천거되었다. 이천상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재백(才伯), 호는 신계(新溪)·경퇴재(景退齋)이다. 아버지는 이군정(李君靖),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민효남(閔孝南)의 딸 영천민씨(榮川閔氏), 할아버지는 군자감봉사을 지낸 이덕량(李德良), 증조할아버지는 충의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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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인구의 변화는 그 지역의 자연적·사회적·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역 사회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된다. 특히 인구는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인 것으로 인구수나 구조, 분포 등은 지역의 제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인구 추이 및 이동, 지역별 인구 분포를 통하여 영주시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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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에게 식민통치를 당했던 영주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은 식민지 수탈 상황 속에서 전개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정치적으로 영주 지역은 일제의 식민정책 기조에 따른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영주군이 새로 생겼으며, 1940년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되었다. 또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폭압정치 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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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위항(張緯恒)[1678~1747]은 지금의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영조 연간 색목(色目)이 만연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향촌에서는 향교·서당·서원의 기문과 상량문 등을 지었으며, 직접 운곡서당(雲谷書堂)을 경영하는 등 문풍 진작을 위해 힘썼다. 장위항의 자는 천응(天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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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후상(張后相)[1677~1742]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박사·예조정랑·양산군수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 때 의병을 일으켰다. 장후상의 자는 몽여(蒙予), 호는 석문(石門),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인 장수희(張壽禧)[1516~1586],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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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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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조선지도(朝鮮地圖)』는 1767~1776년경 제작된 조선 후기 전국 군현지도책으로 20리 방안 위에 그려진 대표적인 관찬 지도이다. 다른 군현지도와 달리 주기(注記)가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각 고을에 사용된 방안의 개수는 일정하지 않다. 1면에 1개의 군현을 그리는 기준을 삼았기 때문에 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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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지승』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지승(地乘)』은 전국의 군사 요충지와 군현을 총 5책으로 나누어 제작한 회화식 지도책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태와 내용은 『안동도회 좌통지도』, 『해동지도』, 『여지도』 등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지도책 중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의 지도는 3책 경상도 편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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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영주 지역 선비들이 만든 자치계.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부용계(芙蓉契)는 사마회(司馬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마회 모임의 장소인 사마소(司馬所)는 일명 북정자(北亭子)로 당시 영천군(榮川郡) 서북쪽 2리 고청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 북정자는 영주의 사마(司馬)[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학업을 닦던 곳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없었는데, 퇴계(退溪) 이황(李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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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부터 1914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풍기군(豊基郡)은 1450년(문종 즉위년)부터 1914년까지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안정면·봉현면과 예천군 은풍면·효자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조선 초기 기천현(基川縣)은 은풍현(殷豊縣)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다 1450년 7월 문종의 태가 안치되면서 은풍현과 기천현을 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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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조선 정부가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지방 정책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이다. 총 8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현(豊基縣)[풍기군(豊基郡)의 오기]은 5책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2008년 12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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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공공문제 해결 및 공공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되어 행해지는 제반 활동.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까지는 국가의 질서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기존 질서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시설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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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제도는 크게 상층구조인 주(州)·부(府)·군(郡)·현(縣) 등 군현제 영역과 하부구조인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 부곡제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향·부곡은 신라시대부터 존재한 것 같지만, 수공업 생산 등을 담당했던 소, 궁원과 사원에 속했던 장·처 등은 고려시대 성립된 것으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