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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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죽죽(竹竹)은 158년(아달라이사금 5)에 죽령(竹嶺) 개통을 주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설화에는 장군이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 신라본기 제2의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편에는 “5년(158) 봄 3월에 죽령을 열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때 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죽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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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영주 출신의 호족. 강공훤(康公萱)은 남북국시대 풍기 지역 호족으로 왕건(王建)[877~943]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강공훤의 생몰 연대와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공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공훤(公萱)’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939년(태조 22)에 세워진 「보리사대경대사탑비(菩提寺大鏡大...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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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세거한 문신. 권정(權定)[1353~1411]은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둔한 문신이다. 권정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안지(安之)이며, 호는 사복재(思復齋)이다. 할아버지는 중랑장을 지낸 권수영(權守英), 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권현(權顯)이다. 아들로는 권조(權照), 권요(權曜)[1379~1460], 권서(權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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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세거한 문신. 김로(金輅)[1351~?]는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고향에 은둔한 문신으로 예안김씨 가문의 현조이다. 김로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이다. 아버지는 비순위정용호군(備巡衛精勇護軍)을 지낸 김방식(金方軾)이다. 부인은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를 지낸 윤인희(尹仁禧)의 딸 덕풍윤씨(德豊尹氏)이며, 아들은 영유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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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무신. 김준(金俊)[?~1268]은 무신으로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인 최의(崔竩)[?~1258]를 죽이고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김준의 출생 연도와 본관은 알려지지 않으며, 천예(賤隸) 출신이라고 한다. 초명은 김인준(金仁俊)이다. 아버지 김윤성(金允成)은 최충헌(崔忠獻)[1149~1219]의 가노였으며, 동생은 김승준(金承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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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세거한 무신. 김중서(金重瑞)는 좌우위정용낭장(左右衛精勇郎將)을 지낸 무신으로 함창김씨(咸昌金氏) 영주 입향조이다. 김중서의 본관은 함창(咸昌)이다. 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里)를 지낸 김귀(金龜)이며, 어머니는 보승산원(保勝散員)을 지낸 권계(權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동생은 수안궁녹사(壽安宮錄事)를 지낸 김중보(金重寶)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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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목(安牧)[1290~1360]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전래한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손자로 문과 급제 후 판전교시사, 밀직부사 등을 지냈다. 안목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익지(益之), 호는 겸재(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 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 아버지는 검교찬성사를 지낸 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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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문개(安文凱)[1273~1338]는 문과 급제 후 좌대언, 첨의참리, 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안문개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균(安鈞), 자는 국평(國平), 호는 질재(質齋),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아버지는 상호군 안성철(安成哲)이며, 어머니는 안천부(安天富)의 딸이다. 부인은 서희량(徐希亮)의 딸 복흥서씨(福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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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보(安輔)[1302~1357]는 고려 문과와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며, 경주사록, 밀직제학, 정당문학, 동경유수 등을 지냈다. 안보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원지(員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득재(安得財),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로 모두 흥녕현(興寧縣)[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호장(戶長)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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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우기(安于器)[1265~1329]는 밀직부사 겸 대사헌, 검교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아버지 안향(安珦)[1243~1306]을 이어 문재(文才)로 명성이 높았다. 안우기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허중(虛中), 호는 죽옥(竹屋),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할아버지는 주리(州吏)로 의업에 종사하다가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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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원숭(安元崇)[1301~?]은 문과 급제 후 밀직부사, 양광도안렴사, 정당문학 등을 지냈다. 안원숭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정(安靖),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 할아버지는 검교찬성사를 지낸 안우기(安于器)[1265~1329],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안목(安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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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종원(安宗源)[1325~1394]은 문과 급제 후 양광도안렴사, 전법총랑, 판삼사사 등을 지냈다.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판문하부사에 임명되었다. 안종원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청(嗣淸), 호는 쌍청당(雙淸堂),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할아버지는 안석(安碩)인데 현리로 있으면서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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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축(安軸)[1282~1348]은 고려 문과와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며, 밀직부사, 정치도감판사 등을 지냈다. 안축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득재(安得財),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로 모두 흥녕현(興寧縣)[지금의 영주시 순흥면]의 호장(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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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향(安珦)[1243~1306]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제향되었다. 안향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유(安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훗날 이름을 ‘안향’으로 고쳤지만, 조선의 5대 임금 문종과 휘가 같아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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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운경(鄭云敬)[1305~1366]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아버지로 전교교감, 밀성군지사, 형부상서 등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정운경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화현호장 정공미(鄭公美), 할아버지는 비서랑동정 정영찬(鄭英粲), 아버지는 검교군기감 정균(鄭均)이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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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중길(秦中吉)[1308~?]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계림판관을 지냈다. 진중길의 본관은 풍기(豊基), 호는 행정(杏亭)이다. 아버지는 중문지후를 지낸 진효정(秦孝貞), 아들은 사재감부정을 지낸 진소유(秦小儒), 사위는 병부원외랑을 지낸 최림(崔霖), 손자는 조선 전기 사헌부장령을 지낸 진호(秦浩)[1367~14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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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질명(秦礩溟)[?~?]은 문하좌시중을 지낸 인물로 풍기진씨(豊基秦氏)의 중시조이다. 진질명의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아버지는 문하좌정승을 지낸 진계춘(秦繼春)이며, 어머니는 평장사를 지낸 이세보(李世譜)의 딸 우봉이씨(牛峰李氏)이다. 부인은 밀직승지를 지낸 정충민(鄭忠愍)의 딸 연일정씨(延日鄭氏)이며, 아들은 좌우위보승장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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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근(黃瑾)[1302~?]은 예문관직제학, 옥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황근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아버지는 영해부사를 지낸 황원로(黃原老)이며, 어머니는 밀직부사 상호군을 지낸 우팽(禹伻)의 딸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초계군수를 지낸 황유정(黃有定)[1343~?]이며, 며느리가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딸...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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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경행(權景行)[?~?]은 예안현감을 지냈으며, 좌익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영주에서 제민루 건립과 향서당 증축에 참여하였다. 권경행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권현(權顯), 할아버지는 고려 말 절의인사인 권정(權定)[1353~1411], 아버지는 보령현감을 지낸 권요(權曜)[1379~1460],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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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유선(權有善)[1528~?]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중종 연간 관직을 지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영강정(暎江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권유선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정(汝正), 호는 용담(龍潭)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권평(權評), 어머니는 달양군 서처정(徐處正)의 딸 공인 달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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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난상(金鸞祥)[1507~1570]은 사간원정언·홍문관응교·사간원대사간 등을 지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났을 때 파직당하였으며,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으로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김난상의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계응(季應), 호는 병산(缾山)·매양(梅陽)·운계(雲溪)이다. 아버지는 강예원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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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김농(金農)[1534~1591]은 음직(蔭職)으로 동부참봉·용궁현감·장예원사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풍산김씨(豊山金氏)의 영주 입향조이다. 김농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명보(明甫), 호는 화남(華南)이다. 아버지는 훈련원부정을 지낸 김의정(金義貞)[1495~1547], 어머니는 평양부서윤을 지낸 김번(金璠)[14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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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담(金淡)[1416~1464]은 세종 연간 문과 급제 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왕명을 받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을 편찬하였다. 김담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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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사문(金士文)[1502~1549]은 영천군(榮川郡) 출신으로 1538년(중종 3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원주교수, 사간원정언, 형조좌랑, 울진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김사문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질부(質夫)이다. 아버지는 증 승정원좌승지 김우(金佑), 어머니는 진사 권균(權均)의 딸 증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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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증(金潧)[1413~1456]은 세종 연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집현전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김증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호는 회송헌(懷松軒)으로 김증(金曾)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영유현령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4~1449], 어머니는 공조판서 황유정(黃有定)[1343~?]의 딸 정부인 평해황씨(平海黃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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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무신. 김한진(金漢珍)[?~?]은 진해현감, 동래현령 등을 지낸 무신이다. 김한진의 본관은 함창(咸昌), 호는 정곡(正谷)이다. 아버지는 의성현령을 지낸 김속(金續), 어머니는 중랑장을 지낸 금용화(琴用和)의 딸 숙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지낸 김이음(金爾音)[?~1409], 증조할아버지는 좌우위정용낭장을 지낸 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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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김흠조(金欽祖)[1461~1528]는 예문관봉교·제주목사·장예원판결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1506년(중종 1) 사초(史草)를 열람한 이극돈(李克墩)[1435~1503]·유자광(柳子光)[1439~1512] 등에 대한 처벌과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를 입은 김종직(金宗直)[1431~1492]·김일손(金馹孫)[1464~1498]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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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묘소가 있는 문신. 류빈(柳濱)[1367~1448]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된 문신이다. 류빈의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완원군(完原君)이다. 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류극서(柳克恕)[?~1388], 어머니는 진양부원군 하윤린(河允潾)[1321~?]의 딸 증 숙부인 진주하씨(晉州河氏), 할아버지는 완산백 류습(柳濕)이다. 류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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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문경동(文敬仝)[1457~1521]은 양산군수·사옹원정·청풍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삼포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였다. 문경동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흠지(欽之), 호는 창계(滄溪)인데, 문경동의 문집인 『창계집(滄溪集)』에는 본관이 감천(甘泉)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전연사직장을 지낸 문속명(文續命), 어머니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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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민응기(閔應祺)[1530~?]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광해군의 왕자사부를 지낸 문신이다. 민응기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향(伯嚮), 호는 우수(尤叟)·경퇴재(景退齋)이다. 아버지는 생원 민시원(閔蓍元),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할아버지는 진사 민우삼(閔友三),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민소(閔紹)이다. 부인은 창원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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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승간(朴承侃)[1508~1588]은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 후 개령현감·강릉대도호부사 등을 지냈다. 박승간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열(子悅), 호는 인암(忍庵)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형(朴珩)[1479~1549], 어머니는 김만일(金萬鎰)의 딸 정부인 예안김씨(禮安金氏)[선성김씨(宣城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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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문과 급제 후 경주부윤, 사간원대사간 등의 관직을 지냈다. 박승임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형(朴珩), 어머니는 김만일(金萬鎰)의 딸 정부인 예안김씨(禮安金氏)[선성김씨(宣城金氏)], 할아버지는 부사직을 지낸 박숙(朴䃞), 증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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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송계(宋啓)[1373~1442]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영주 입향조로 문과 급제 후 군기시부정 등을 지냈다. 송계의 호는 동강(東岡),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할아버지는 덕성군 송문(宋文)이며, 할머니는 예부상서를 지낸 박정수(朴廷秀)의 딸 정부인 밀양박씨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조산대부에 올랐던 송구(宋璆)로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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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에 우거한 문신. 송인창(宋仁昌)[1403~1479]은 할아버지 송구(宋璆)가 순흥교수로서 영주 지역과 인연을 맺은 후, 아버지 송계 대에 영주 지역 사족들과 혼반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기반과 환력으로 인해 송계(宋啓)[1373~1442]와 송인창·송원창(宋元昌)[1426~1496] 부자는 영주에 우거한 직후부터 빠르게 영주 사족들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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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경공(安景恭)[1347~1421]은 고려 말 경상도안렴사, 좌대언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판한성부사, 집현전대제학 등을 지냈다. 왕조 개창에 공이 있어 익대개국공신에 녹훈되었다. 안경공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손보(遜甫), 시호는 양도(良度)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찬성사를 지낸 안축(安軸)[1282~1348],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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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공신(安公信)[1496~1561]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직강·홍문관교리·청풍군수 등을 지냈다. 안공신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보(大寶), 호는 매담(梅潭)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안계문(安季文), 아버지는 진사 안영(安瑛)[?~1592], 어머니는 진사 박경원(朴慶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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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안상(安瑺)[?~?]은 16세기 문신이자 음악행정가였다. 영천군수(榮川郡守) 재임 중에는 이황(李滉)[1501~1570]의 건의로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였다. 안상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해주목사를 역임한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5세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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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원(安瑗)[1346~1411]은 고려 말 형조판서, 지신사 등을 지냈다. 조선 개창 후에는 개성유후사유후, 동서강등처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안원의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정(安定), 시호는 경질(景質)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 안우기(安于器)[126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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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종약(安從約)[1355~1424]은 고려 말 우정언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황주판관, 사헌부장령, 창원부사 등을 지냈다. 안종약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안목(安牧)[?~1360], 할아버지는 정당문학 안원숭(安元崇), 아버지는 안원(安瑗)[1346~1411], 어머니는 판서 남휘주(南輝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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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천보(安天保)[1339~1425]는 고려 말 판종부시사, 공부전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 태종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나아갔으며, 세종 연간 좌의정, 영돈녕부사에 제수되었다. 안천보의 본관은 순흥(順興), 시호는 소의(昭懿)이다. 할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안문개(安文凱)[1273~1338], 아버지는 순성군 안천선(安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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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부임한 문신. 이보흠(李甫欽)[1398~1457]은 순흥도호부사로 있으면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충절을 인정받아 장릉(莊陵)의 배식단(配食壇)에 배향되었고, 영주 금성대군 신단에도 위(位)가 안치되어 있다. 이보흠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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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사맹(李師孟)[1396~?]은 충청도도사·홍문관부제학·병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사맹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학이(學而), 죽선(竹仙)·괴정(槐亭), 시호는 온혜(溫惠)이다. 아버지는 함길도도관찰사를 지낸 이유(李愉)[1365~1423], 어머니는 좌윤을 지낸 안영부(安永孚)[1398~1464]의 딸 정부인 순흥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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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억(李薿)[?~?]은 고려 말 강계원수로 있으면서 요동지방을 공략하였으며, 조선 개창 후에는 개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억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신지(信之), 호는 퇴은(退隱)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사를 지낸 이사성(李思誠), 어머니는 요동도지휘사를 지낸 남성로(南星老)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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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유(李愉)[1365~1423]는 형조참판·함길도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동북면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여진족들을 회유하는데 힘썼다. 이유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명보(明普), 호는 은재(隱齋)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를 지낸 이영(李英), 어머니는 정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 할아버지는 집현전대제학을 지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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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진(李畛)[1420~1484]은 임피현령을 지냈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지금의 영주 지역에 은거하였다. 이진의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대여(大汝), 호는 송암(松巖)·두은(杜隱)이다. 아버지는 지의주사를 지낸 이곤(李袞), 어머니는 정부인 김씨(金氏), 할아버지는 이형근(李亨根)[이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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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이해(李瀣)[1496~1550]는 이황(李滉)[1501~1570]의 형으로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다. 이해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산부사 이정(李禎), 할아버지는 진성군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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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과 연고가 있는무신. 임자번(林自蕃)[?~1486]은 무과 출신으로 정난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전라도병마절도사·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임자번은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운문리에 세거한 예천임씨의 현조이다. 임자번의 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예기(藝起),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순무어사 임익(林益), 증조할아버지는 판윤 임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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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현재 영주 지역에는 장말손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초상·유품·고문서 등이 전한다. 장말손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지가주군사를 지낸 장전(張戩), 할아버지는 고려 말 문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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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 전희철(全希哲)[1425~1521]은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권력을 잡자, 관직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영주 지역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켜나갔다. 영주 지역 옥천전씨(沃川全氏) 입향조로 방산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전희철의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이다. 고조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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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복(鄭道復)[1351~1435]은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동생으로 조선 초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정도복의 자는 내지(來之), 호는 일봉(逸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을 지낸 정영찬(鄭英粲), 할아버지는 검교군기시정을 지낸 정균(鄭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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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더불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도와 조선 개창을 주도하였다.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작위는 봉화백(奉化伯)이다. 정도전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증오(曾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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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정종소(鄭從韶)[?~?]는 성종 연간 영천군수(榮川郡守)를 역임했던 문신으로 영주 지역 교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종소의 자는 가정(可貞), 호는 정헌(靖軒),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아버지는 정문예(鄭文裔)이다. 정종소는 1447년(세종 29) 봄 문과 발영시에 급제하여 성균관학록이 되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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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수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 시호는 문민(文敏),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주유(周瑜)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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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담(秦澹)[1450~1527]은 사헌부감찰·경산현령·사도시정·양양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진담의 자는 지용(智用),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계림판관을 역임한 진중길(秦中吉)[1308~?],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진소유(秦小儒), 할아버지는 봉산군수 진호(秦浩)[1367~1425], 아버지는 예문관직제학을 지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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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호(秦浩)[1367~1425]는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문인으로 사헌부장령, 봉산군수 등을 지냈다. 진호의 본관은 풍기(豊基), 호는 유탄(柳灘)이다. 할아버지는 계림판관을 지낸 진중길(秦中吉)[1308~?], 아버지는 사재감부정을 지낸 진소유(秦小儒), 부인은 달성부원군 서의(徐義)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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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하륜(河崙)[1347~1416]은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으로서 정사공신과 좌명공신에 녹훈되었다. 공민왕 연간에는 지영주군사로 부임하여 영주향교를 건립하는 등 영주 지역에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하륜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상서좌사낭중를 역임한 하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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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과 연고를 가진 문신. 황계옥(黃啓沃)[1458~1494]은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황계옥의 자는 부옹(傅翁), 호는 초곡(草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황현(黃鉉)[1369~1434], 할아버지는 생원 황중하(黃仲夏), 아버지는 선공감정을 지낸 황진손(黃震孫), 어머니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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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사우(黃士祐)[1486~1536]는 문과 장원 급제 후 경상도도사·영천군수·예조판서·우찬성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사우의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慵軒),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 황전(黃躔)[1391~1459]은 영일현감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황귀경(黃貴卿)은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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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유정(黃有定)[1343~?]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환하였던 문신으로 초계군수·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황유정의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지정(黃之挺), 할아버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로 영천(榮川) 초곡[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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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응규(黃應奎)[1518~1598]는 문과 급제 후 전생서주부·호조정랑·청도군수·동지돈녕부사 등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켰다. 황응규의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우참찬 황사우(黃士祐)[1486~1536]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 영일오씨(迎日吳氏)이다. 부인은 의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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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준량(黃俊良)[1517~1563]은 신녕현감·단양군수·성주목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황준량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생원 황연(黃鋋)으로 순흥훈도를 지냈으며, 영천(榮川)에서 풍기로 옮겨온 평해황씨 입향조가 된다.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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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현(黃鉉)[1369~1434]은 조선 태종 대에 출사하여 거듭 과거에 급제한 후 경승부소윤·성균관대사성 등을 지냈다. 황현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가 영천(榮川)으로 이주한 이래 이 가문은 영천과 봉화 등지의 사족들과 혼인을 이어갔다. 황원로는 단양우씨(丹陽禹氏)와 혼인하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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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효공(黃孝恭)[1496~1553]은 문과 급제 후 승문원·성균관·사간원·사헌부 등에서 재직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학을 양성하였다. 역학과 도상학에 밝았으며 이황(李滉)[1501~1570]과 교유하였다. 황효공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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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곽진(郭瑨)[1568~1633]은 임진왜란 때 화왕산성에서 곽재우(郭再祐)[1552~1617]와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곽진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정보(靜甫), 호는 단곡(丹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곽맹원(郭孟元), 할아버지는 판관을 역임한 곽자보(郭子保), 아버지는 생원 곽한(郭瀚)이다. 어머니는 평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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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두남(權斗南)[1573~1646]은 광해군 연간에 과거 급제하여 병조의 낭관을 비롯해 교서관박사, 함경도도사, 형조정랑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권두남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망(景望), 호는 역락당(亦樂堂)이다. 아버지는 부장을 지낸 권용중(權用中),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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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두문(權斗文)[1543~1617]은 1572년(선조 5) 문과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한 문신이다. 권두문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이다. 아버지는 장악원정을 지낸 권유년(權有年), 어머니는 생원 권극상(權克常)의 딸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부장을 지낸 권담(權譚), 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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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성오(權省吾)[1587~1671]는 1612년(광해군 4) 문과 급제 후 칠원현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등 관직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가하였다. 권성오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성지(省之), 호는 동암(東巖)이다. 아버지는 경기전참봉을 지낸 권호신(權虎臣)[1558~1629],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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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후(權垕)[1602~1667]는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 형조좌랑, 유곡도찰방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지역의 많은 명현과 교유하였다. 권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후지(厚之), 호는 청오당(聽梧堂)이다. 아버지는 진사 권주(權𪐴)[1576~1651], 어머니는 계공랑 류탁(柳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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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금복고(琴復古)[1549~1632]는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강릉참봉(康陵參奉)을 지냈다. 금복고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호여(皥如), 호는 송음(松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군위현감을 지내고 청백리로 유명한 금계(琴啓)[1439~1497],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금원수(琴元壽), 아버지는 진사 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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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금시조(琴是調)[1587~1668]는 문과 급제 후 영해부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금시조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경평(景平), 호(號)는 신암(新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금원수(琴元壽), 할아버지는 진사 금인(琴軔)[1510~1593], 아버지는 생원 금복고(琴復古)[1549~1632], 어머니는 남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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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개국(金盖國)[1548~1603]은 강원도도사·옥천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김개국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양진재(養眞齋)·노봉(蘆峰)이다. 아버지는 김산훈도를 지낸 김몽득(金夢得), 어머니는 진사 이극온(李克溫)의 딸 공주이씨(公州李氏)이다.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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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구정(金九鼎)[1550~1638]은 호조정랑·대구도호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며, 호성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김구정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경진(景鎭), 호는 서현(西峴)이다. 아버지는 선원전참봉을 지낸 김희준(金希俊), 어머니는 천문습독을 지낸 정효종(鄭孝宗)의 딸 숙부인 동래정씨(東萊鄭氏),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사종(金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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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대현(金大賢)[1553~1602]은 성현도찰방·산음현감 등을 지냈다.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의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칠송정(七松亭) 동도회(同道會)를 조직하였다. 김대현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희지(希之), 호는 유연당(悠然堂)이다. 아버지는 장예원사의를 지낸 김농(金農)[1534~1591], 어머니는 군자감첨정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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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륵(金玏)[1540~1616]은 문과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김륵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사명(金士明),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인데, 형조좌랑을 지낸 큰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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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방(金埅)[1706~1778]은 문과 급제 후 명릉별검, 예조정랑, 자인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방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거경(巨卿), 호는 쌍암(雙巖)이다. 아버지는 김홍렬(金弘烈), 어머니는 정언을 지낸 김창석(金昌錫)[1652~1720]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김가주(金可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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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봉조(金奉祖)[1572~1630]는 문과 급제 후 경상도도사·단성현감·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김봉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장예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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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선(金鍌)[1596~1660]은 1625년(인조 3) 문과에 급제한 이후 형조좌랑·황해도도사·당진현감·흥해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선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여정(汝精), 호는 고산(孤山)·매학당(梅鶴堂)이다. 아버지는 승사랑 김수선(金首善), 어머니는 여절교위 이희열(李希說)의 딸 단인 진성이씨(眞城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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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시빈(金始鑌)[1684~1729]은 예조정랑·거창현감·울산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영조 즉위 초 김일경(金一鏡)[1662~1724]이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쓴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의 개찬(改撰)을 청원하였다. 김시빈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휴백(休伯), 호는 백남(白南)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金鼎輝),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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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약련(金若鍊)[1730~1802]은 1776년(정조 즉위년)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 이응원(李應元)의 상소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당했다. 김약련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유성(幼成), 호는 두암(斗庵)·인수(忍叟)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지(金墀), 어머니는 생원 박태래(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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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김염조(金念祖)[1589~1652]는 과천현감·안산군수·종친부전첨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과천 지역을 수호하였다. 김염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수(孝脩), 호는 학음(鶴陰)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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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영(金瑩)[1765~1840]은 1804년(순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자여도찰방·사헌부장령 등을 지냈다. 김영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겸(義兼), 호는 괴헌(槐軒)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김경집(金慶集)[1715~1794], 어머니는 금서봉(琴瑞鳳)의 딸 봉화금씨(奉化琴氏)와 김태빈(金兌彬)의 딸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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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영조(金榮祖)[1577~1648]는 문과 급제 후 형조정랑·길주목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장예원사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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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요흠(金堯欽)[1614~1656]은 성균관박사·전라도도사·통례원봉례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요흠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흠지(欽之), 호는 괴암(乖菴)이다. 아버지는 진사 김우추(金遇秋), 어머니는 종사랑 송침(宋沉)의 딸 의인 야성송씨(冶城宋氏), 할아버지는 통덕랑 김도(金陶), 증조할아버지는 사재감참봉을 지낸 김응린(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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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용범(金龍範)[1755~1810]은 1798년(정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예조좌랑·사직서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용범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천서(天敍), 호는 묵재(默齋)이다. 아버지는 김택연(金宅延), 어머니는 생원 전필기(全必錡)의 딸 옥천전씨(沃川全氏), 할아버지는 김수규(金守槼), 증조할아버지는 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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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우익(金友益)[1571~1639]은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도사, 한성부서윤, 해미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김우익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택지(擇之), 호는 두암(斗巖), 금학헌(琴鶴軒)이다. 아버지는 사섬시첨정을 지낸 김윤의(金允誼), 어머니는 충의위 조양(趙諒)의 딸 숙인 한양조씨(漢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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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위(金㙔)[1709~1789]는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사헌부지평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초명은 단(壇), 자는 공준(公準)·호경(虎卿), 호는 갈수헌(渴睡軒)이다. 아버지는 김원렬(金元烈), 어머니는 진사 류창시(柳昌時)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이다.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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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응조(金應祖)[1587~1667]는 선산도호부사·사간원사간·홍문관응교·한성부우윤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응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아헌(啞軒)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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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정(金亻+政)[1670~1737]은 경성판관·강계도호부사·제주목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정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峰)이다. 아버지는 비변랑을 지낸 김휘봉(金輝鳳)[1643~1683],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금성휘(琴聖徽)[1622~1682]의 딸 증 숙부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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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직(金直)[1745~1817]은 성균관전적·경상도도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직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지(敬之), 호는 지애(芝厓)이다. 아버지는 김광호(金光鎬), 어머니는 통덕랑 송응현(宋應賢)의 딸 야성송씨(冶城宋氏),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수삼(金秀三), 증조할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우벽(金友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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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무신. 김진선(金振先)[?~?]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무과 급제 후 여러 외관직을 역임하였다. 김진선의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선여(善汝)이다. 아버지는 연천현감을 지낸 김호신(金虎臣)[1550~1581], 어머니는 현령을 지낸 박대수(朴大秀)의 딸 정부인 고령박씨(高靈朴氏), 할아버지는 영릉참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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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진하(金鎭河)[1786~1865]는 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병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진하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치청(穉淸), 호는 황암(篁巖)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김기중(金基中), 어머니는 생원 김구련(金龜鍊)의 딸 증 정부인 예안김씨(禮安金氏), 계모는 권사집(權思戢)의 딸 증 정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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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했던 문신. 김택룡(金澤龍)[1547~1627]은 경릉참봉·강원도도사·영월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도산서원 원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김택룡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시보(施普), 호는 와운자(臥雲子)·조성당(操省堂)이다. 아버지는 덕릉참봉을 지낸 김양진(金楊震),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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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나이준(羅以俊)[1602~1676]은 문과 급제 후 공조좌랑, 병조좌랑, 고부군수, 홍문관수찬 등을 지냈으며, 수성나씨(壽城羅氏) 가문의 영주 입향조이다. 나이준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택우(宅于), 호는 매음(梅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나경문(羅景文), 증조할아버지는 영릉참봉을 지낸 나응두(羅應斗), 할아버지는 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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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무신. 나태좌(羅泰佐)[1700~?]는 무과 급제 후 여러 무관직을 지냈다. 경종 연간 세제(世弟)였던 영조를 호위하였고,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났을 때는 토벌에 참전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나태좌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화숙(和叔), 호는 이암(怡菴)이다. 수성나씨 영주 입향조인 증 이조참판 나이준(羅以俊)[1602~167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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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나학천(羅學川)[1658~1731]은 문과 급제 후 병조좌랑·인동부사·좌승지·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연간에는 남인으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학천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사도(師道), 호는 창주(滄洲)이다. 할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나이준(羅以俊)[1602~1676],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나수종(羅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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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류영경(柳永慶)[1550~1608]은 이조판서·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이며, 호성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류영경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춘호(春湖)이다. 아버지는 문소전참봉을 지낸 류의(柳儀), 어머니는 사도시첨정을 지낸 노첨(盧僉)의 딸 증 정경부인 교하노씨(交河盧氏), 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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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녹(朴漉)[1542~1632]은 천거로 사근도찰방·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영주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박녹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징(子澄), 호는 취수헌(醉睡軒)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박승임(朴承任)[1517~1586], 어머니는 집의를 지낸 권오기(權五紀)[1463~?]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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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박선장(朴善長)[1555~1616]은 문과 급제 후 예안현감·경상도도사 등을 지낸 문신이며, 이산서원의 원장을 역임하였다. 박선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여인(汝仁), 호는 수서(水西)이다. 아버지는 호조정랑을 지낸 박전(朴全)[1514~1558], 어머니는 사직을 지낸 주행(朱幸)의 딸 웅천주씨(熊川朱氏),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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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시원(朴時源)[1764~1842]은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봉화현감·사헌부집의·사간원사간 등을 지낸 문신이다. 박시원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실(穉實), 호는 일포(逸圃)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박사표(朴師豹), 어머니는 권취규(權就揆)의 딸 증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와 김필화(金必鏵)의 딸 증 숙부인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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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제연(朴齊淵)[1807~1890]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지평·통례원좌통례·병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박제연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원(聖源), 호는 오헌(吾軒)이다.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박재순(朴在純)[1789~1849], 어머니는 권사선(權師善)의 딸 증 정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박성간(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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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한(朴𤥚)[1576~1652]은 풍기군수·선산도호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박한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윤보(潤甫), 호는 회이당(悔易堂)이다. 아버지는 경상도도사를 지낸 박선장(朴善長)[1555~1616], 어머니는 진사 남몽오(南夢驁)의 딸 정부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호조정랑을 지낸 박전(朴全)[1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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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홍준(朴弘儁)[1704~1755]은 문과 급제 후 호조좌랑·영광군수·사헌부집의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박홍준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경(子敬), 호는 괴천(槐川)이다. 아버지는 생원 박태래(朴泰來)[1673~1738], 어머니는 강재필(姜再弼)[1654~1730]의 딸 진주강씨(晉州姜氏)와 이춘영(李春英)[15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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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회무(朴檜茂)[1575~1666]는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의금부도사·황산도찰방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 이후 스스로 ‘숭정야로(崇禎野老)’라고 부르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나갔다. 박회무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이다. 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박녹(朴漉)[1542~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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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배상익(裵尙益)[1581~1631]은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 후 성균관학유·진주판관 등을 지냈다. 배상익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익재(益哉), 호는 치암(癡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형조참판 배유(裵裕), 할아버지는 증 형조판서 배무원(裵茂元), 아버지는 나주목사를 지낸 배응경(裵應褧)[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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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배응경(裵應褧)[1544~1602]은 박승임(朴承任)[1517~1586]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 후 사헌부감찰·호조정랑·나주목사 등을 지냈다. 배응경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회보(晦甫), 호는 안촌(安村)이다. 증 제용감정 배윤문(裵潤文)의 증손자이고, 할아버지는 증 형조참의 배유(裵裕)이다. 아버지는 배무원(裵茂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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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 성기인(成起寅)[1674~1737]은 권두인(權斗寅)[1643~1719]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영주·봉화 지역 인사들과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성기인의 자는 천상(天祥), 호는 낙애(洛厓),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헌납 성이성(成以性)[1595~1664], 할아버지는 성석하(成錫夏)[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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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성세욱(成世頊)[1677~1753]은 문과 급제 후 신녕현감, 병조좌랑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성세욱의 자는 근원(謹元), 호는 송파(松坡),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성안의(成安義)[1561~1629], 할아버지는 성이성(成以性)[1595~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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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성안의(成安義)[1561~1629]는 임진왜란 당시 창녕 지역에서 창의하여 곽재우(郭再祐)[1552~1617] 의병진에 종군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창녕성씨 영주 입향조가 되었다. 성안의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익동(成翼仝),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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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성언집(成彦楫)[1732~1812]은 과거 급제 후 관직에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향촌에서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다. 성언집의 자는 용여(用汝), 호는 남애(南厓),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세벽(成世璧), 할아버지는 성희인(成喜寅), 아버지는 성찬(成澯)인데, 모두 사환에 뜻을 두지 않고 재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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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성이성(成以性)[1595~1664]은 문과 급제 후 강계부사 등을 지냈으며, 판소리 「춘향가」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성이성의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성이성의 아버지는 성안의(成安義)[1561~1629]로 승정원우부승지를 지냈다. 어머니는 호조참판 김계선(金繼善)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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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손회종(孫會宗)[1602~1667]은 문과 급제 후 자인현감·공조정랑·해남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손회종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해(君海), 호는 석탄(石灘)이다. 아버지는 생원 손화(孫龢),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금복고(琴復古)[1549~1632]의 딸 의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진사 손흥경(孫興慶)[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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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손흥경(孫興慶)[1543~1611]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손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여(景餘), 호는 명암(鳴巖)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을 지낸 손난(孫蘭), 어머니는 숙부인 원주변씨(原州邊氏),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손의형(孫義亨), 증조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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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송광벽(宋光壁)[1628~1701]은 문과 급제 후 청송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숙종 연간 상소를 올려 인현왕후 복위를 청원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축대를 쌓고 매월 초하루에 분향망배 했는데, 그 자리를 ‘공진대(供辰臺)’라고 부른다. 송광벽의 자는 문성(文星), 호는 응봉(鷹峯), 본관은 야성(冶城)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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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송동윤(宋東胤)[1729~1799]은 문과 급제 후 삼례도찰방 등을 지냈다. 송동윤의 자는 하승(夏承),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양주송씨 영주 입향조인 송규(宋珪)[1504~1564]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송형태(宋亨泰), 어머니는 김학창(金學昌)의 딸 예안김씨(禮安金氏)이다. 부인은 이형신(李亨新)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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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신의명(申義命)[1654~1716]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학규·사헌부감찰·강령현감 등을 지냈다. 신의명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안수(安叟), 호는 외암(畏巖)·경옹(敬翁)이다. 아버지는 신양세(申揚世)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김직(金溭)의 딸이다. 부인은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서원부원군 정탁(鄭琢)[15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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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안몽윤(安夢尹)[1571~1650]은 음보로 군직에 나아갔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진무공신에 녹훈되었다. 안몽윤은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안경률(安景嵂)[?~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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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욱(安頊)[1581~1649]은 문과 급제 후 상원현감·흥양현감 등을 지냈다. 안욱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근재(謹哉), 호는 만지정(萬枝亭)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를 역임한 안거(安璖)[1519~?], 아버지는 효행으로 공조참의에 증직된 안응일(安應一)[1549~?],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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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치묵(安致默)[1826~1867]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안치묵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휴(士休), 호는 죽남(竹南)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응성(安應成), 아버지는 안정진(安廷震),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황기한(黃綺漢)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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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여벌(吳汝橃)[1579~1635]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문과 급제 후 홍문관수찬·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여벌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허(景虛), 호는 남악(南岳)·경암(敬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의현감 오언의(吳彦毅)[1494~1566], 할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1510~1574],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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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여은(吳汝檼)[1561~1633]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헌납, 홍문관전한 등을 지냈다. 오여은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융보(隆甫), 호는 낙애(洛厓)·벽계(碧溪)이다. 할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이며, 할머니는 안관(安灌)[1491~1593]의 딸이다. 아버지는 경주부윤을 역임한 죽유 오운(吳澐)[154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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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운(吳澐)[1540~1617]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송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운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율계(栗溪)·백암(白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석복(吳碩福)[1455~1533]으로 만년에 의령현감을 지낸 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정착하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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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달의(李達意)[1616~1705]는 문과 급제 후 함안군수·단천군수·사헌부장령·첨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이달의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정(以正), 호는 석촌(石村)이다. 아버지는 회양부사를 지낸 이숭언(李崇彦)[1582~1666], 어머니는 무공랑 권집(權集)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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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상언(李尙彦)[1597~1671]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정언·영암군수·함안군수 등을 지냈다. 이상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수(容叟), 호는 성서(城西)이다. 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이휘음(李徽音)[1575~1609], 어머니는 통례원좌통례를 지낸 권두문(權斗文)[1543~1617]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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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인행(李仁行)[1758~1833]은 생원시 급제 후 온릉참봉에 천거되었으며, 이후 의금부도사·형조정랑·고산현감·익위사익위 등을 지냈다. 이인행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공택(公宅), 호는 신야(新野)이다. 아버지는 이관섭(李觀燮), 어머니는 이덕상(李德祥)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할아버지는 이사덕(李師德), 증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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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점(李蒧)[1579~1627]은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광해군 연간 조정에서 폐모론에 가담하여, 인조반정 후 유배되었다. 이점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성(師聖), 호는 천유자(天遊子)·태백(太白)이다. 아버지는 영춘현감을 지낸 이덕홍(李德弘)[1541~1596], 어머니는 남응건(南應乾)의 딸 증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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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무신. 이정견(李庭堅)[1557~1610]은 무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및 관군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이정견의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직경(直卿)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이석간(李碩幹)[1502~1574], 어머니는 이린(李麟)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 할아버지는 생원 이함(李諴), 증조할아버지는 내금위 이종손(李從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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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징도(李徵道)[1652~1737]는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도원도찰방·성균관직강 등을 지냈으며, 무신난(戊申亂) 때 의병을 일으켰다. 이징도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이시(以時), 호는 무릉(武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성명(李聖命)이고 어머니는 도사를 지낸 이시암(李時馣)[1607~?]의 딸 원주이씨(原州李氏)인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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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위항(張緯恒)[1678~1747]은 지금의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영조 연간 색목(色目)이 만연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향촌에서는 향교·서당·서원의 기문과 상량문 등을 지었으며, 직접 운곡서당(雲谷書堂)을 경영하는 등 문풍 진작을 위해 힘썼다. 장위항의 자는 천응(天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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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장진(張瑱)[1635~1707]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장령·진주목사·강계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향촌에 있을 때는 영주 지역의 명유들과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장진의 자는 군옥(君玉), 호는 모암(茅菴),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적개공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6대손으로 고조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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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후상(張后相)[1677~1742]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박사·예조정랑·양산군수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 때 의병을 일으켰다. 장후상의 자는 몽여(蒙予), 호는 석문(石門),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인 장수희(張壽禧)[1516~1586],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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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옥(鄭玉)[1694~1760]은 무신난 때 영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여 학문 진작에 힘썼다. 오광운(吳光運)[1689~1745]과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정옥을 영남 제일의 인물로 평가하였다. 정옥의 자는 자성(子成), 호는 우천(牛川),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정옥의 5대조는 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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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조보양(趙普陽)[1709~1788]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감찰, 오위장 등을 지냈다. 영주 지역의 여러 인사와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보양의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한양조씨는 기묘사화 이후 청하현감을 지낸 조종(趙琮)[1444~1520]의 처가가 있는 경상도 영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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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상홍(秦尙弘)[1569~1651]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으로 활약하였고, 전란 후에는 관직에 나아가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만년에는 학문 연구에 침잠하여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진상홍의 자는 의백(毅伯), 호는 반환당(盤桓堂),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과를 지낸 진사원(秦士元),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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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홍익한(洪翼漢)[1586~1637]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이다. 홍익한의 초명은 습(霫),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운옹(雲翁),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찬성 홍숙(洪淑)[1464~1538]의 현손이며, 관찰사 홍서주(洪叙疇)[1499~1546]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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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서(黃曙)[1554~1603]는 문과 급제 후 호조정랑·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풍기가장(豊基假將)으로 임명되었다. 황서의 자는 광원(光遠), 호는 종고(宗皐),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희성(黃希聖), 할아버지는 직장을 지낸 황사호(黃士豪), 아버지는 훈도를 지낸 황여규(黃汝奎), 어머니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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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섬(黃暹)[1544~1616]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정언·병조참지·안동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다. 광해군 연간 정치적 탄압을 받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황섬의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 또는 돈암(遯庵), 본관은 창원(昌原),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우참찬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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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시(黃是)[1555~1626]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병조참의·삼척부사 등을 지냈다. 광해군 즉위 이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학문 활동에 전념하였다. 황시의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 좌찬성 황희성(黃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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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유중(黃有中)[1564~1620]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광해군 연간에 풍기로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썼다. 황유중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정(仲正), 호는 조대(釣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황응규(黃應奎)[151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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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인채(黃鱗采)[1716~1799]는 문과 급제 후 종부시주부·제주판관을 지냈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황인채의 자는 국량(國亮)·계칙(季則), 호는 양몽재(養蒙齋),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황이무(黃以茂), 증조할아버지는 증 대사헌 황정(黃渟), 할아버지는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된 황도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