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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부석면 소천리에 걸쳐 있는 산. 자개봉(紫蓋峰)[859m]은 영주시 단산면과 부석면에 연하여 있는 봉우리이다. 고치령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자개지맥에 있다. 자개봉의 남서쪽 골짜기에는 단산저수지가 있는데, 단산저수지 옆의 큰 산이 한밤중 자시[23시~1]에 열린다고 하여 ‘자개봉’이라고 전해진다. 자개봉은 소백산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능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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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홍준(朴弘儁)[1704~1755]은 문과 급제 후 호조좌랑·영광군수·사헌부집의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박홍준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경(子敬), 호는 괴천(槐川)이다. 아버지는 생원 박태래(朴泰來)[1673~1738], 어머니는 강재필(姜再弼)[1654~1730]의 딸 진주강씨(晉州姜氏)와 이춘영(李春英)[1563~1606]의 딸 전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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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에 있는 산. 자구산(子求山)[757.5m]은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와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자구산의 동쪽은 영주시이고 서쪽은 예천군이다. 자구산은 영주시의 서쪽에 남북 방향으로 발달한 산맥이다. 자구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 옥녀봉이 연결되어 있으며 모래재골을 넘어 묘적봉과 도솔봉까지 연결되어 있다. 또한, 남쪽 능선은 예천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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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옥(鄭玉)[1694~1760]은 무신난 때 영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여 학문 진작에 힘썼다. 오광운(吳光運)[1689~1745]과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정옥을 영남 제일의 인물로 평가하였다. 정옥의 자는 자성(子成), 호는 우천(牛川),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정옥의 5대조는 좌의정을 지낸 정탁(鄭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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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성오(權省吾)[1587~1671]는 1612년(광해군 4) 문과 급제 후 칠원현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등 관직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가하였다. 권성오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성지(省之), 호는 동암(東巖)이다. 아버지는 경기전참봉을 지낸 권호신(權虎臣)[1558~1629], 어머니는 박우(朴遇)의 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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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전익희(全益禧)[1598~1659]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으며, 청렴한 관직 생활로 칭송을 받았다. 전익희의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설월당(雪月堂),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옥천전씨 영주 입향조인 상장군 전희철(全希哲)[1425~1521]의 5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전응두(全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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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의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 소백산국립공원은 『2016 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생물종 목록』에 의하면, 한반도 온대 중부의 대표적인 식생을 갖는 지역이다. 낙엽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데, 멸종위기종은 47종, 식물자원은 철쭉 등 1,513종, 동물자원은 포유류 등 3,369종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주시의 자연경관을 설명한다면 단연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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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기상·지변·생물 등 예기치 않은 자연적 변동으로 인명·재산 등이 입는 피해. 자연재해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고도 하며 홍수, 태풍, 해일, 가뭄, 폭설, 지진, 화산 폭발 등의 자연현상 발생으로 인해 인명이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재해의 발생 원인은 크게 지구 내적 작용과 외적 작용으로 나뉜다. 내적 작용은 지구 내부의 맨틀 대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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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의 지질·지형·기후 등 자연지리적 요소. 영주시는 총면적 668.89㎢의 도시로, 이중 임야 66.3%[443.25㎢], 밭 10.5%[69.98㎢], 논 11.5%[77.10㎢], 과수원 1.3%[8.97㎢], 대지면적 1.7%[11.45㎢], 기타 11.5%[58.14㎢]이다. 영주시의 동단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안동시 녹전면의 경계로 북위 36°46´,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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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 생고개에 전해오는 효자 이윤정에 관한 이야기. 「자연도 감동시킨 효자 이윤정」은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 생고개에 전해지는 인물전설이다. 생현리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효자 이윤정(李允貞)의 효자비가 남아 있다. 「자연도 감동시킨 효자 이윤정」은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에 거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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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승간(朴承侃)[1508~1588]은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 후 개령현감·강릉대도호부사 등을 지냈다. 박승간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열(子悅), 호는 인암(忍庵)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형(朴珩)[1479~1549], 어머니는 김만일(金萬鎰)의 딸 정부인 예안김씨(禮安金氏)[선성김씨(宣城金氏)], 할아버지는 부사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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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효자. 권주(權𪐴)[1576~1651]는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왜군으로부터 구한 효자이다. 권주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지(子止), 호는 춘수당(春睡堂)이다. 아버지는 통례원좌통례를 지낸 권두문(權斗文)[1543~1617], 어머니는 박해(朴海)의 딸 숙부인 반남박씨(潘南朴氏), 할아버지는 장악원정을 지낸 권유년(權有年), 증조할아버지는 부장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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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녹(朴漉)[1542~1632]은 천거로 사근도찰방·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영주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박녹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징(子澄), 호는 취수헌(醉睡軒)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박승임(朴承任)[1517~1586], 어머니는 집의를 지낸 권오기(權五紀)[1463~?]의 딸 정부인 예천권씨(醴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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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지내는 세시풍속. 동지(冬至)는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보통 음력 11월 중순 무렵이다. 태음력에서 동짓날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동지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24절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주 지역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짓날은 팥으로 죽을 쑤고 찹쌀 단자를 만들어 넣는다. 팥의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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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 있는 고개. 잠뱅이재는 영주시 풍기읍의 교촌리에서 미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교촌리에서 금계천을 지나 올라가면 동양대학교가 있는데 동양대학교 현암정사와 회헌재 사이에 있는 고개가 잠뱅이재이다. 산등성이가 담뱃대처럼 길게 생겼다 하여 ‘담배등이’라고 부르던 것을 오랜 세월 동안 변형되어 ‘잠뱅이재’로 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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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14~15세기 홍패와 백패. 장계 홍패 및 장말손 백패·홍패는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있는 장말손(張末孫)[1431~1486] 종가에 소장된 고문서이다. 백패 및 홍패의 수급자는 장계(張桂)와 장계의 후손인 장말손으로 현재 장계 홍패 및 장말손 백패·홍패는 장말손 유물각에 소장되어 있다. 장계 홍패 및 장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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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벽화고분. 영주 순흥 어숙묘(榮州順興於宿墓)는 1971년 조사로 알려진 벽화고분으로 산 경사면에 조성된 굴식돌방무덤이다. 내부의 모든 벽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대부분 떨어지고 널길 천장과 돌문에만 남아 있다. 돌문에는 묘지(墓誌)가 새겨져 있어 축조 연대와 무덤 주인공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신라 고분이다. 영주 순흥 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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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 오현리, 대촌리에 걸쳐 있는 산. 장군봉(將軍峰)[730m]은 영주시 봉현면에 있는 봉우리이다. 옥녀봉에서 지르매기, 한티재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주능선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위치한다. 장군봉에서 남서쪽과 북쪽,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기준으로 봉현면의 두산리·오현리·대촌리가 나뉜다. 장군봉은 형세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거느린 장군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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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장도 제작 기술을 보유한 장인. 영풍장도장(榮豊粧刀匠) 김일갑(金一甲)은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01년 김일갑이 사망한 뒤, 이면규와 고준정이 장도장 기능보유자 후보로 장도장 기술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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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현재 영주 지역에는 장말손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초상·유품·고문서 등이 전한다. 장말손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지가주군사를 지낸 장전(張戩), 할아버지는 고려 말 문하부의 급사중을 지낸 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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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 소장된 장말손의 유품. 장말손 유품(張末孫遺品)은 조선 전기 문신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과 패도(佩刀)로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仁同張氏宗宅)의 장말손 유물각에 보관되어 있다. 장말손 유품은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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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장말손의 적개공신교서. 장말손 적개공신교서(張末孫敵愾功臣敎書)는 조선 전기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 종가에 전해지는 고문서이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장말손은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었고, 그 과정에서 적개공신교서가 발급되었다. 적개공신은 모두 45명인데, 현재 적개공신교서는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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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장말손 종가 고문서는 조선 전기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종가에 소장된 5종 18점의 고문서이다. 1385년(우왕 11) 장전(張戩)이 올린 소지를 비롯하여 분재기·교지·입안·녹패 등이 소장되어 있어, 고려 말 조선 초의 사회·경제상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장말손 종가 고문서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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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 소장된 장말손의 초상화. 장말손 초상(張末孫肖像)은 조선 전기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초상화이다. 장말손은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공신도상으로 꼽히는데, 공신 책록을 계기로 제작된 것으로 흉배의 문양이 문관 1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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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장복규(張復圭)[1826~1896]는 1896년 1월 서상열 의진(徐相烈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태봉전투(台峰戰鬪)에서 패전한 후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장복규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삼(聖三), 호는 사이재(四而齋)이다. 아버지는 장원진(張元鎭),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세조 때 적개공신에 녹훈된 연복군 장말손(張末孫)[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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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오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장복식의 정려각. 장복식 효자각(張復軾孝子閣)은 효자 장복식의 효행을 기념하기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각이란 효자,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이나 마을 입구 등에 세운 건물을 의미한다. 장복식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장응려의 방손이다. 장복식은 조선 헌종 때 용양부호군과 오위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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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사건(張師健)[1919~1951]은 1941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사건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1919년 12월 30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식 이름으로 송평정육(松平精育)을 사용하였다. 장사건은 1933년 3월 경성제1공립고등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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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석창(張錫昌)[1924~1973]은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었다가 탈출한 뒤,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들어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장석창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인서(仁瑞)이며, 아버지는 장재덕(張載德)이다. 1924년 11월 16일 지금의 영주시 안정면 오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장석창은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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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지동리와 봉화군 봉화읍 적덕리를 연결하는 고개. 장수고개는 영주시 이산면 지동리와 봉화군 봉화읍 적덕리를 잇는 고개이다. 이산면 일대의 내성천 동쪽에 발달한 구릉성 산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봉화와 영주를 오가는 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오갔던 길이라 하여 ‘장수고개’로 불린다. 영주시 가흥동에도 장수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는 동해에서 소금 장수와 생선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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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교회. 장수교회(長壽敎會)는 대한예수장로회 통합 영주노회 영중시찰회 소속 교회이다. 장수교회는 장수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장수교회는 최대신 장로가 1934년 3월 2일 신분선 집에서 최초로 예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신분선이 기증한 대지 위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1935년 3월 1일 장수교회를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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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있는 테마파크. 장수조이월드는 영주시 외곽 남서쪽 8㎞ 지점에 있는 테마파크로 어린이 놀이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이용된다. 1991년 10월 21일 장수조이월드로 최초 등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수조이월드는 165,289.256㎡[5만여 평] 규모의 농원 내에 바이킹·눈썰매장·범퍼카·회전그네·레이스 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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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는 ‘건강하고 명랑한 어린이[건강인]’,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성인]’,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창의인]’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초등학교의 교훈은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배움에는 열정을’이다. 장수초등학교는 1930년 8월 30일 설립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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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영주의 장수면 호문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장수면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4월 11일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에 있는 청년 손달익(孫達翼)이 호문리 마을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윤덕(張潤德)·송득용(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 등과 함께 호문리 마을 앞산으로 올라가서 벌인 만세운동이다. 그러나 호문리를 순찰 중이던 헌병들에게 곧 발각되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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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전해 내려오는 장수가 못된 아이에 대한 이야기. 「장수가 못 된 아이」는 아기장수전설의 한 유형이다. ‘콩을 먹지 마라’, ‘자기가 있는 곳을 절대 가르쳐주지 마라’라고 하는 금기를 어기는 어머니 때문에 장수가 되지 못한 아이에 대한 전설로 어리석은 어머니 때문에 비범한 아이를 못 크게 하는 비극을 담고 있다. 「장수가 못 된 아이」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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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는 ‘건강하고 명랑한 어린이[건강인]’,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성인]’,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창의인]’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초등학교의 교훈은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배움에는 열정을’이다. 장수초등학교는 1930년 8월 30일 설립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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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는 ‘건강하고 명랑한 어린이[건강인]’,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성인]’,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창의인]’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초등학교의 교훈은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배움에는 열정을’이다. 장수초등학교는 1930년 8월 30일 설립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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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는 ‘건강하고 명랑한 어린이[건강인]’,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성인]’,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창의인]’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초등학교의 교훈은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배움에는 열정을’이다. 장수초등학교는 1930년 8월 30일 설립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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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수초등학교는 ‘건강하고 명랑한 어린이[건강인]’,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성인]’,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창의인]’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장수초등학교의 교훈은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배움에는 열정을’이다. 장수초등학교는 1930년 8월 30일 설립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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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 일원에 조성된 농공단지. 영주장수농공단지는 1993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조성되었다. 농공단지는 1984년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법률 제3689호, 1983년 12월 31일 제정]에 따라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득 증대를 위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를 뜻한다. 영주장수농공단지는 영주 지역 농촌 유휴인력 활용과 시가지 환경개선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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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뚜껍바위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장수를 빌던 뚜껍바위」는 영주시 휴천동에 전하는 아기장수전설의 변이형이다. 바보로 놀림당하던 송석(宋石)이 잉어를 잡아먹고 힘이 센 장수로 거듭나지만, 민중의 능력을 두려워하던 간신들은 그 어머니를 부추겨 아들을 죽이게 한다. 장수를 잃은 용마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다가 사라진다. 2010년 영주시사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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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장수면(長壽面)은 영주시 남서쪽에 있는 면으로 예천군 감천면과 이어져 있다. 8개 법정리[갈산리, 두전리, 반구리, 성곡리, 소룡리, 파지리, 호문리, 화기리]와 20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는 반구리에 있다. 장수면 명칭은 조선시대 장수원(長壽院)에서 유래했다. 장수원은 지금의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있는 마을이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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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영주의 장수면 호문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장수면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4월 11일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에 있는 청년 손달익(孫達翼)이 호문리 마을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윤덕(張潤德)·송득용(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 등과 함께 호문리 마을 앞산으로 올라가서 벌인 만세운동이다. 그러나 호문리를 순찰 중이던 헌병들에게 곧 발각되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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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영주의 장수면 호문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장수면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4월 11일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에 있는 청년 손달익(孫達翼)이 호문리 마을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윤덕(張潤德)·송득용(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 등과 함께 호문리 마을 앞산으로 올라가서 벌인 만세운동이다. 그러나 호문리를 순찰 중이던 헌병들에게 곧 발각되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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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장수면 행정을 관할하는 공공기관. 장수면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는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리와 68개 반이고, 법정리는 8개[반구리·두전리·갈산리·파지리·성곡리·화기리·소룡리·호문리]이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는 영주시 장수면의 행정사무를 관장함으로써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는 1914년 「도의위치관할구역및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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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있는 장수면 행정을 관할하는 공공기관. 장수면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는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리와 68개 반이고, 법정리는 8개[반구리·두전리·갈산리·파지리·성곡리·화기리·소룡리·호문리]이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는 영주시 장수면의 행정사무를 관장함으로써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장수면행정복지센터는 1914년 「도의위치관할구역및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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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오랫동안 전통산업이나 서비스업을 꾸려나감으로써 지역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사업체. 향토기업은 향토뿌리기업, 장수서비스기업, 그 외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상점이나 기업을 함께 지칭한다. 경상북도는 2013년 전국 최초로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 및 산업유산 지원 조례」[도조례 제3476호, 2013년 11월 11일 제정]를 제정하고, 대를 이어 30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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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 일원에 조성된 농공단지. 영주장수농공단지는 1993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에 조성되었다. 농공단지는 1984년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법률 제3689호, 1983년 12월 31일 제정]에 따라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득 증대를 위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를 뜻한다. 영주장수농공단지는 영주 지역 농촌 유휴인력 활용과 시가지 환경개선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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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市場)이란 상품이 교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일컫는 말로, ‘장(場)’, ‘시(市)’, ‘장시(場市)’로, 현대에는 재래시장, 전통시장 등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은 개설 주기[5일 또는 10일 간격]를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가, 또는 매일 열리는가에 따라 정기시장과 상설시장으로 구분된다. 근대 이전 시장은 대개 관아(官衙)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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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장신(張璶)[1629~1711]은 숙종 연간 유일로 천거되었으며, 개령현감 등을 지냈다. 장신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온(仲溫), 호는 직방재(直方齋)·금강(錦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참의 장수희(張壽禧)[1516~1586], 할아버지는 진사 장여화(張汝華)[1566~1621], 아버지는 교위를 지낸 장용현(張龍見), 어머니는 승사랑 김희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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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위항(張緯恒)[1678~1747]은 지금의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영조 연간 색목(色目)이 만연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향촌에서는 향교·서당·서원의 기문과 상량문 등을 지었으며, 직접 운곡서당(雲谷書堂)을 경영하는 등 문풍 진작을 위해 힘썼다. 장위항의 자는 천응(天應), 호는 운소(雲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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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장진(張瑱)[1635~1707]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장령·진주목사·강계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향촌에 있을 때는 영주 지역의 명유들과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장진의 자는 군옥(君玉), 호는 모암(茅菴),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적개공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6대손으로 고조할아버지 장응필(張應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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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장후상(張后相)[1677~1742]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박사·예조정랑·양산군수 등을 지냈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난 때 의병을 일으켰다. 장후상의 자는 몽여(蒙予), 호는 석문(石門),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인 장수희(張壽禧)[1516~1586],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장여화(張汝華)[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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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효자. 이천상(李天相)[1637~1708]은 효행과 학문으로 참봉에 천거되었다. 이천상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재백(才伯), 호는 신계(新溪)·경퇴재(景退齋)이다. 아버지는 이군정(李君靖),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민효남(閔孝南)의 딸 영천민씨(榮川閔氏), 할아버지는 군자감봉사을 지낸 이덕량(李德良), 증조할아버지는 충의위 이백춘(李百春)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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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 11월 17일부터 1520년 9월 8일까지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황사우가 쓴 일기. 『재영남일기(在嶺南日記)』는 중종 대에 경상도도사를 지냈던 황사우(黃士祐)[1486~1536]가 재임 중에 있었던 일을 날짜순으로 적은 일기이다. 황사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慵軒)·사우(士佑)이다. 아버지는 황희성(黃希聖), 어머니는 진유경(秦有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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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정구가 편찬한 경상도 순흥도호부의 읍지. 『재향지(梓鄕誌)』는 1849년(헌종 15) 순흥도호부의 사족 안정구(安廷球)[1803~1863]가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조선 후기 순흥도호부 지역을 소개한 읍지 중에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9년 소수박물관에서 『(국역) 재향지』를 발간했다. 안정구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명중(鳴仲)으로 안향(安珦)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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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인공 저수시설. 저수지는 농어촌 용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하천, 하천 구역 또는 연안 구역 등에 물을 가두어 두거나 관리하기 위한 시설과 홍수위(洪水位)[하천의 최고 수위] 이하 수면 및 토지를 말한다. 「농어촌정비법」 제2조에 따라 저수지는 농업생산기반시설로 분류된다. 영주시의 저수지는 전통시대부터 축조되었으며, 농업의 발달에 따라 저수지의 수도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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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는 ‘건강한 어린이[건강]’, ‘멋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어린이[예술]’, ‘창조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지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어린이[인성]’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3년 4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5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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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교회. 문수교회(文殊敎會)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영주노회 영남시찰회 소속 교회이다. 문수교회는 문수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문수교회는 임순기·김돌이 외 7명의 신도가 1931년 3월 1일 영주군 문수면 적동리 잿마랭이에서 기도실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34년 경안노회로부터 적동교회로 명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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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문수초등학교는 ‘건강한 어린이[건강]’, ‘멋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어린이[예술]’, ‘창조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지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어린이[인성]’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3년 4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5월 1일 적동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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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적동리(赤東里)는 영주시 문수면 9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적동1리, 적동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적동, 보팔[본마], 양달몰, 음달몰, 사느네[사천, 사느래], 장바우[장암], 탑거리[탑동] 등이 있다. 적동리 명칭은 마을 옆 붉은 바위[적벽암(赤壁岩)]에서 유래했다. 적벽의 동쪽이 되므로 ‘적동(赤東)’이라 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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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적서동 일원에 조성된 농공단지. 영주적서농공단지는 1991년 영주시 적서동에 조성되었다. 농공단지는 1984년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법률 제3689호, 1983년 12월 31일 제정]에 따라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득 증대를 위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를 뜻한다. 영주적서농공단지는 영주 지역 농촌 유휴인력 활용과 시가지 환경개선 등을 통해 지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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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적서동(赤西洞)은 영주 시내 남쪽에 있으며, 행정동은 휴천3동에 속한다. 자연마을로는 방갓[율지], 서원마, 연동골, 아치나리[娥川, 鵝川], 거촌[큰 마을] 등이 있다. 적서동 명칭은 마을 옆에 있는 붉은 바위에서 유래했다. 적벽암(赤壁岩)의 서쪽이 되므로 ‘적서(赤西)’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천군 적포면 적서동·권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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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경북 북부의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 영주적십자병원은 2018년 개원한 영주시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영주적십자병원은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서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 특성을 고려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에 영주적십자병원은 ‘사랑과 봉사, 희망을 전하는 공공의료기관’, ‘존중하는 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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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속하는 법정리. 전구리(前丘里)는 영주시 풍기읍 14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전구1리, 전구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적전들[윗두들], 앞두들[전구], 옥동 등이 있다. 전구리 명칭은 앞두들마을에서 유래했다. ‘앞두들’은 마을 앞에 언덕과 같은 넓은 들판이 있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기군 창락면 이동 일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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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대양1리에 있는 평해황씨 집성촌. 평해황씨(平海黃氏)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평해황씨의 시조는 중국 후한 대의 학사로 교지국(交趾國)[지금의 월남]으로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하여 살았다는 황락(黃洛)이다. 다만 그 계대가 분명하지 않아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을 역임한 황온인(黃溫仁)을 기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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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류영경(柳永慶)[1550~1608]은 이조판서·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이며, 호성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류영경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춘호(春湖)이다. 아버지는 문소전참봉을 지낸 류의(柳儀), 어머니는 사도시첨정을 지낸 노첨(盧僉)의 딸 증 정경부인 교하노씨(交河盧氏), 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류세린(柳世麟)[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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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전익희(全益禧)[1598~1659]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으며, 청렴한 관직 생활로 칭송을 받았다. 전익희의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설월당(雪月堂),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옥천전씨 영주 입향조인 상장군 전희철(全希哲)[1425~1521]의 5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전응두(全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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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정석(全正錫)[1913~1972]은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1930년 영주 지역에서 격문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전정석은 1913년 3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에서 출생하였다. 전정석은 1928년 1월 6일 영주 언론인을 대표해 김천청년동맹회관에서 개최된 경북기자대회에 참석한 뒤,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경북기자대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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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전통양식의 가옥. 한옥은 현대식 주택이나 ‘양옥’이라 불리는 서양식 건물로 지어진 건축물과 달리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방식과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영주시에는 4,325채가 있는데, 영주시에 있는 건축물 열 채 중 한 채일 정도로 한옥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영주시 이산면·평은면·안정면 지역에 많은 한옥이 있으며, 읍면 지역에 영주시 한옥의 72.8%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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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전해지는 지역의 풍습과 생활상이 반영된 놀이. 민속놀이는 지역의 풍습과 지역민의 생활상이 반영된 유희를 말한다. 흔히 전통놀이의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속’과 ‘전통’이 가리키는 개념과 범주에는 차이가 있다. 민속놀이에서 ‘민’이 가리키는 것은 국가, 관, 사족과 대비되는 대중을 의미하는 공시적 범주지만, 전통놀이에서 ‘전통’이 가리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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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일대에 있는 체험마을. 영주시에 위치하는 솔향기마을, 피끝마을, 장생이마을, 금대마을, 한밤실, 녹색농심인삼체험마을, 새내역사체험마을, 소백산단산포도마을 등에서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또 선비촌, 영주 무섬마을 등지에서는 전통한옥 고택체험도 있다. 솔향기마을은 2006년 조성되었으며 소백산 자락 장군봉 아래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영주시 봉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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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 전희철(全希哲)[1425~1521]은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권력을 잡자, 관직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영주 지역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켜나갔다. 영주 지역 옥천전씨(沃川全氏) 입향조로 방산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전희철의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부전서를 역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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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 있는 고개. 잠뱅이재는 영주시 풍기읍의 교촌리에서 미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교촌리에서 금계천을 지나 올라가면 동양대학교가 있는데 동양대학교 현암정사와 회헌재 사이에 있는 고개가 잠뱅이재이다. 산등성이가 담뱃대처럼 길게 생겼다 하여 ‘담배등이’라고 부르던 것을 오랜 세월 동안 변형되어 ‘잠뱅이재’로 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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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에 있는 전통마을. 정감록촌(鄭鑑錄村)은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장소를 의미하는 십승지 중 첫 번째로 꼽히는 곳으로,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를 일컫는 지명이다. 10승지의 위치에 관해 『정감록』의 「감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풍기 금계촌, 안동 화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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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응봉(鄭應鳳)[1895~1947]은 1910~1920년대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자금 마련과 신간회(新幹會)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응봉은 1895년 5월 15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정의극(鄭義極)과 정건중(鄭健中)을 사용하였다. 정응봉은 1915년 영주에서 대동상점(大同商店)을 운영하였는데, 대동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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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무신. 김한진(金漢珍)[?~?]은 진해현감, 동래현령 등을 지낸 무신이다. 김한진의 본관은 함창(咸昌), 호는 정곡(正谷)이다. 아버지는 의성현령을 지낸 김속(金續), 어머니는 중랑장을 지낸 금용화(琴用和)의 딸 숙인 봉화금씨(奉化琴氏),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지낸 김이음(金爾音)[?~1409], 증조할아버지는 좌우위정용낭장을 지낸 김중서(金重瑞)이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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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복(鄭道復)[1351~1435]은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동생으로 조선 초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정도복의 자는 내지(來之), 호는 일봉(逸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을 지낸 정영찬(鄭英粲), 할아버지는 검교군기시정을 지낸 정균(鄭均), 아버지는 형부상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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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더불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도와 조선 개창을 주도하였다.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작위는 봉화백(奉化伯)이다. 정도전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증오(曾吾), 호는 삼봉(三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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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건립된 누각과 정자.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로 통칭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조에는 누정을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정은 주로 휴식의 의미가 강하게 내재하여 있었기 때문에 절경에 독립된 단일 건물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정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사방의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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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이해(李瀣)[1496~1550]는 이황(李滉)[1501~1570]의 형으로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다. 이해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산부사 이정(李禎), 할아버지는 진성군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埴), 어머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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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유배 온 왕자.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아들로 둘째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순흥도호부로 유배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지에서 처형당했고, 순흥도호부는 해체되었다. 금성대군의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유(瑜),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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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출신의 군인. 정병주(鄭柄宙)[1926~1989]는 육군 특전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군인으로 전두환의 12.12군사반란 때 반기를 들다 강제 예편당하였다. 정병주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방계 후손이다. 1926년 영주군 이산면 용상리 배해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정병주는 1949년 육군사관학교 제9기로 입학하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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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성안의(成安義)[1561~1629]는 임진왜란 당시 창녕 지역에서 창의하여 곽재우(郭再祐)[1552~1617] 의병진에 종군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창녕성씨 영주 입향조가 되었다. 성안의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익동(成翼仝), 할아버지는 성윤(成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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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곽진(郭瑨)[1568~1633]은 임진왜란 때 화왕산성에서 곽재우(郭再祐)[1552~1617]와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곽진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정보(靜甫), 호는 단곡(丹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곽맹원(郭孟元), 할아버지는 판관을 역임한 곽자보(郭子保), 아버지는 생원 곽한(郭瀚)이다. 어머니는 평해황씨(平海黃氏)로 참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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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진(金東鎭)[1867~1952]은 1914년 임병찬(林炳瓚)[1851~1916]이 조직한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대한독립의군부의 활동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9년 3월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 때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1925년 김창숙(金昌淑)[1879~1962]이 벌인 군자금 모집에 관여하여 1926년 5월 이른바 제2차 유림단의거에 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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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동진의 시문집. 『정산집(貞山集)』은 김동진(金東鎭)[1867~1952]의 시문집이다. 김동진의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직재(履直齋),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의 유풍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과 제2차 유림단의거 등 독립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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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동진의 시문집. 『정산집(貞山集)』은 김동진(金東鎭)[1867~1952]의 시문집이다. 김동진의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직재(履直齋),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의 유풍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과 제2차 유림단의거 등 독립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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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동진의 시문집. 『정산집(貞山集)』은 김동진(金東鎭)[1867~1952]의 시문집이다. 김동진의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직재(履直齋),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의 유풍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과 제2차 유림단의거 등 독립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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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했던 문신. 정시한(丁時翰)[1625~1707]은 숙종 연간 영남지방에서 활동한 유학자이다. 병자호란 때 풍기 지역으로 피난하였으며, 한동안 부석사에 머물기도 하였다. 정시한의 자는 군익(君翊), 호는 우담(愚潭),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정윤복(丁胤福)[1544~1592], 할아버지는 정호관(丁好寬)[1568~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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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그 정신문화. 영주 소수서원(榮州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으로 조선 유학의 메카였다. 우리나라 서원의 전범(典範)을 제시하고, 나아가 학문을 숭상하고 절의를 지키는 유교적 인격 배양에 노력하였다. 1543년(중종 38)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서 출발하여 1550년(명종 5)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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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 위치한 계곡. 정안동계곡(靜安洞溪谷)은 영주시 풍기읍의 제1연화봉[1,394.4m]과 비로봉(毘盧峰)[1,439.5m]을 분수령으로 하는 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한다. 금계천의 최상류에 발달한 계곡이다. 정안동계곡 명칭은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자연마을인 정안동에서 유래했다. ‘정안동’은 과거 이 골짜기에 정안사(靜安寺)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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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학자. 정언숙(丁彦璛)[1600~1693]은 예천군수,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자, 나주정씨의 영주 입향조이다. 정언숙의 자는 군서(君瑞), 호는 검암(儉巖) 또는 수고헌(壽考軒),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명종 연간 병조판서와 좌찬성을 지낸 정응두(丁應斗)[1508~1572], 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을 지낸 정윤복(丁胤福)[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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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옥(鄭玉)[1694~1760]은 무신난 때 영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여 학문 진작에 힘썼다. 오광운(吳光運)[1689~1745]과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정옥을 영남 제일의 인물로 평가하였다. 정옥의 자는 자성(子成), 호는 우천(牛川),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정옥의 5대조는 좌의정을 지낸 정탁(鄭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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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휘정(金輝珽)[1841~1901]은 1896년 순흥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김휘정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정옥(廷玉)이다. 1841년 경상도 순흥도호부 도탄(桃灘)[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서 김낙표(金樂驃)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휘정은 1895년 8월 일제가 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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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운경(鄭云敬)[1305~1366]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아버지로 전교교감, 밀성군지사, 형부상서 등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정운경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화현호장 정공미(鄭公美), 할아버지는 비서랑동정 정영찬(鄭英粲), 아버지는 검교군기감 정균(鄭均)이며, 부인은 당시 영주 지역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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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음력 1월 15일을 맞이하여 행하는 세시풍속. 정초의 설은 가족과 동족 집단 중심의 명절이지만 정월 대보름은 마을과 이웃 중심의 명절이다. 영주 지역에서는 대부분 마을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또한, 이웃과 함께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고 풍년을 바라는 다양한 민속들이 정월 대보름에 행해진다. 정월 대보름은 보름,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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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응봉(鄭應鳳)[1895~1947]은 1910~1920년대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자금 마련과 신간회(新幹會)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응봉은 1895년 5월 15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정의극(鄭義極)과 정건중(鄭健中)을 사용하였다. 정응봉은 1915년 영주에서 대동상점(大同商店)을 운영하였는데, 대동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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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응봉(鄭應鳳)[1895~1947]은 1910~1920년대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자금 마련과 신간회(新幹會)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응봉은 1895년 5월 15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정의극(鄭義極)과 정건중(鄭健中)을 사용하였다. 정응봉은 1915년 영주에서 대동상점(大同商店)을 운영하였는데, 대동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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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전하는 선비 정이간과 숙종의 이야기. 「정이간과 춘추」 이야기에서 나오는 정이간(鄭易簡)은 숙종의 도움으로 과거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낙방하고 말았다고 한다. 숙종은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복을 입고 잠행을 자주 나갔는데 그때 만난 백성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중 글을 읽던 선비와 과거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특히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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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섬(黃暹)[1544~1616]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정언·병조참지·안동부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다. 광해군 연간 정치적 탄압을 받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황섬의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 또는 돈암(遯庵), 본관은 창원(昌原),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우참찬을 지낸 황사우(黃士祐)[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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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정종소(鄭從韶)[?~?]는 성종 연간 영천군수(榮川郡守)를 역임했던 문신으로 영주 지역 교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종소의 자는 가정(可貞), 호는 정헌(靖軒),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아버지는 정문예(鄭文裔)이다. 정종소는 1447년(세종 29) 봄 문과 발영시에 급제하여 성균관학록이 되었으며, 1447년 가을에는 문과 중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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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권력과 권위를 획득·유지·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통합하는 총체적 활동.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개개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지위가 평등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러한 불평등과 갈등·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며,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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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태진(丁泰鎭)[1876~1960]은 경술국치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1847~1916]와 함께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활약하였다. 1919년에는 국내에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태진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노수(魯叟), 호는 외재(畏齋) 또는 서포(西浦)이다. 1876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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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해붕(鄭海鵬)[1924~1991]은 안동농림학교 제8·9·10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1944년 10월 조직된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의 단원으로 1945년 2월 27일 무장봉기를 결행할 계획을 세우고 자금 조달과 동지 규합에 진력하다가, 1945년 3월 10일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해붕은 1924년 12월 9일 영주군 영주면 영주리에서 태어나 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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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정종소(鄭從韶)[?~?]는 성종 연간 영천군수(榮川郡守)를 역임했던 문신으로 영주 지역 교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종소의 자는 가정(可貞), 호는 정헌(靖軒),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아버지는 정문예(鄭文裔)이다. 정종소는 1447년(세종 29) 봄 문과 발영시에 급제하여 성균관학록이 되었으며, 1447년 가을에는 문과 중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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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전하는 정희량 장수에 대한 이야기. 「정희량과 일조봉」은 영주시 순흥면에 전해 내려오는 아기장수전설의 한 유형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희량(鄭希亮)[?~1728]은 경상도 안음현(安陰縣) 출신이지만, 1728년(영조 4)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나기 직전 순흥 죽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실제 정희량은 이야기와 달리 무신난 때 안음·거창·합천 일대에서 거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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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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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와 수철리에 걸쳐 있는 산. 제2연화봉(第二蓮花峰)[1,357m]은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이다. ‘연화봉(蓮花峰)’이라는 명칭은 전국 산지에서 종종 확인되는 이름으로, 이와 같은 이름은 산의 생김새가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한 경우가 많다. 소백산 연화봉의 경우 『재향지(梓鄕誌)』에 희방용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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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서 1926년 사이 영주를 비롯해 경상북도 일대에서 전개된 유림 대표들의 군자금 모집 활동. 제2차 유림단의거는 1925년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금을 위해 시작되었다. 송영호(宋永祜)를 비롯해 영주 지역 출신으로는 송재호(宋在祜)·김동진(金東鎭)·김제직(金濟稷)·권상수(權相銖)·박제형(朴濟衡)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1926년 관련자들이 체포되면서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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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서 1926년 사이 영주를 비롯해 경상북도 일대에서 전개된 유림 대표들의 군자금 모집 활동. 제2차 유림단의거는 1925년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금을 위해 시작되었다. 송영호(宋永祜)를 비롯해 영주 지역 출신으로는 송재호(宋在祜)·김동진(金東鎭)·김제직(金濟稷)·권상수(權相銖)·박제형(朴濟衡)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1926년 관련자들이 체포되면서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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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영주시 관할 치안행정기관. 영주경찰서(榮州警察署)는 영주시 지역의 치안과 주민 안전을 위해 1945년 10월 국립경찰의 창설과 함께 설립되었다. 영주경찰서는 영주 시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 범죄 예방·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 수집, 교통 단속,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 설립되었다. 영주경찰서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 10월 대구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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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신이나 조상을 받드는 제사 의례. 제례(祭禮)는 죽은 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규범화된 의례로 행하는 빈도에 따라 일회성 또는 부정기적으로 행하는 제례와 주기적으로 행하는 제례로 구분할 수 있다. 일회성이나 부정기적으로 행하는 제례는 상을 당하거나 화를 입었을 때, 그러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기념하거나 조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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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구학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제민루(齊民樓)는 조선 초기 건립된 지방 공립 의료기관으로 의학루(醫學樓)와 영남 선비들의 강학처(講學處)로 활용되었다. 제민루는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제민루는 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2㎞ 거리의 구학공원에 있다. 구학공원은 서천변 얕은 구릉에 조성되어 있는데, 제민루는 구릉을 평지로 조성하여 부속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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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서천 둔치에 설치된 제민루와 관련해 두 차례에 걸쳐 간행된 향토지. 『제민루지(濟民樓志)』는 조선시대 영주에 설치된 공립의료기관인 제민루(濟民樓)의 각종 자료를 엮어 만든 향토지이다. 1996년 영주문화원이 발간한 것과 2018년 제민루보존회에서 발간한 2종의 책이 있다. 제민루에 대한 각종 자료는 제민루보존회에서 보관해 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류가 훼손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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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와 청구리를 연결하는 교량. 제월교는 죽계천을 건너는 국가지원지방도제28호선의 교량이다. 교량 남서쪽 부분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북동쪽 부분은 순흥면 청구리에 속한다. 퇴계 이황이 ‘장맛비가 걷힌 뒤 맑은 하늘같은 선비의 기운이 감돈다.’라는 뜻으로 ‘제월교’라 칭했다고 한다. 제월교의 총길이는 32m이며, 총폭은 10.5m, 유효 폭은 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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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출간된 이성부의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에 수록된 연화봉을 노래한 시. 「제일연화봉」은 이성부(李盛夫)[1942~2012]의 시로 2005년에 출간된 여덟 번째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에 수록되어 있다. 「제일연화봉」은 작가 이성부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하루 이틀씩 토막 산행을 이어가며, 8년여 만에 남측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연작한 ‘내가 걷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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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유중(黃有中)[1564~1620]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광해군 연간에 풍기로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썼다. 황유중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정(仲正), 호는 조대(釣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황응규(黃應奎)[1518~1598], 아버지는 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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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조보양(趙普陽)[1709~1788]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감찰, 오위장 등을 지냈다. 영주 지역의 여러 인사와 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보양의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한양조씨는 기묘사화 이후 청하현감을 지낸 조종(趙琮)[1444~1520]의 처가가 있는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의 사일[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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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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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에 우거하던 강택진 등이 조선13도총간부라는 단체에서 독립활동을 하다 체포된 사건. 조선13도총간부사건(朝鮮十三道總幹部事件)은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13도총간부에서 군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다가 조직원들이 체포된 사건이다. 1919년 10월 강택진(姜宅鎭)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조선13도총간부를 결성하였다. 이후 영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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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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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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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조선지도(朝鮮地圖)』는 1767~1776년경 제작된 조선 후기 전국 군현지도책으로 20리 방안 위에 그려진 대표적인 관찬 지도이다. 다른 군현지도와 달리 주기(注記)가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각 고을에 사용된 방안의 개수는 일정하지 않다. 1면에 1개의 군현을 그리는 기준을 삼았기 때문에 면적인 큰 군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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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했던 문신. 김택룡(金澤龍)[1547~1627]은 경릉참봉·강원도도사·영월군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도산서원 원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김택룡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시보(施普), 호는 와운자(臥雲子)·조성당(操省堂)이다. 아버지는 덕릉참봉을 지낸 김양진(金楊震), 어머니는 내금위 김여광(金礪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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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술바위와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술바위」는 영주시 휴천동에 전해오는 사물 전설로 욕심을 부리느라 땅의 좋은 정기인 청룡맥을 끊어버려 망하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청룡맥은 복을 부르는 땅의 맥을 말한다. 서술자의 말을 통해 덕행을 베풀면 복을 받고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는다는 이치를 강조하고 있다.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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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암동(槽岩洞)은 영주 시내 남동쪽에 있으며, 행정동은 휴천3동에 속한다. 자연마을로는 옹기점, 수청거리[水淸], 노루고개[獐峴], 행재골[형제골], 전단(箭丹)[전계], 사일(沙日, 沙逸) 등이 있다. 조암동 명칭은 마을 인근에 있는 술바위[槽巖]에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천군 산이면 상구동 일부와 초곡동, 어화면 조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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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와동(助臥洞)은 영주 시내 북쪽에 있으며, 행정동은 상망동에 속한다. 자연마을로는 진우(眞友)[조와리], 오룡골, 갓골 등이 있다. 조와동 명칭은 마을 뒷산의 형상에서 유래했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듯하여 ‘조와(助臥)’라 불렀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을 개척한 두 명의 선비들이 우애가 깊어 ‘진우(眞友)’라 하였다고 전해온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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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재하(趙在夏)[1872~1937]는 대한광복회가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5년 설립한 영주 대동상점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대동상점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재하는 1872년 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조용구(趙龍九)이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1월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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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재하(趙在夏)[1872~1937]는 대한광복회가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5년 설립한 영주 대동상점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대동상점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재하는 1872년 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조용구(趙龍九)이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1월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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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제리(助梯里)는 영주시 문수면 9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조제1리, 조제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잔도리[잔두리, 작평], 샛골[사이골, 간곡], 분계, 삼계[세거리], 금영골[금영곡], 멱실[이곡] 등이 있다. 조제리 명칭은 잔도리마을에서 유래했다. 마을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계곡이 긴 관계로 사다리[梯]를 밟듯이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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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반남박씨 집성촌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족제비의 천국 영주 서릿골」은 영주시 가흥1동 서릿골[蟠谷]의 반남박씨(潘南朴氏) 집성촌 내력과 선조의 선행으로 그 후손이 번성하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가문설화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족제비의 안타까운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 조상의 선행 덕분에 그 후손이 복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적선의 교훈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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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반남박씨 집성촌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족제비의 천국 영주 서릿골」은 영주시 가흥1동 서릿골[蟠谷]의 반남박씨(潘南朴氏) 집성촌 내력과 선조의 선행으로 그 후손이 번성하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가문설화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족제비의 안타까운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 조상의 선행 덕분에 그 후손이 복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적선의 교훈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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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종가에 내려오는 내림음식. 영주 지역에서 종가음식을 전승하는 대표적인 종가로는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와 신암리의 선성김씨, 이산면 두월리의 연안김씨, 안정면 용산리의 창원황씨 등이 있다. 영주시에서는 영주 지역의 종가음식을 발굴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의 선성김씨 종가에 내려오는 주요 내림음식은 육설이, 육말,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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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서(黃曙)[1554~1603]는 문과 급제 후 호조정랑·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풍기가장(豊基假將)으로 임명되었다. 황서의 자는 광원(光遠), 호는 종고(宗皐),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희성(黃希聖), 할아버지는 직장을 지낸 황사호(黃士豪), 아버지는 훈도를 지낸 황여규(黃汝奎), 어머니는 정랑 문유창(文有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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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영주시는 경북 북부 내륙 지역으로 야외 노지(爐址)나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된 곳이다. 또한, 고인돌을 비롯해 선돌, 바위그림과 같은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상당수 발굴되었다. 그리고 삼한시대에는 진한 12국 가운데 기저국(己柢國)이 자리하던 곳으로 비정된다. 이런 사실들을 종교적 측면에 대입시켜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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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 종릉재사(鍾陵齋舍)는 류빈(柳濱)의 묘소인 종릉(鍾陵)을 관리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 건립한 재사이다. 류빈이 죽자 태종이 특별히 예장을 명하고 그 무덤을 ‘종릉’이라 했으며, 영천군수(榮川郡守)에게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종릉은 ‘유릉(柳陵)’이라고도 하는데, 묘소와 석물 등을 ‘영주 류빈 묘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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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더불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도와 조선 개창을 주도하였다.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작위는 봉화백(奉化伯)이다. 정도전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증오(曾吾), 호는 삼봉(三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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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좌석리(坐石里)는 영주시 단산면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좌석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상좌석, 하좌석, 독점, 조재기, 연화동 등이 있다. 좌석리 명칭은 마을 중간 논에 있는 앉은 바위[좌석]에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흥군 단산면 조작리, 삼거리, 좌석리를 병합하여 영주군 단산면 좌석리가 되었다.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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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좌석리 좌석 동제는 ‘서낭제’라고 부르며, ‘여서낭’이 신격을 좌정하고 있다. 제일은 정월 초정일(初丁日)이다.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동제를 지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산짐승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동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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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좌석리 좌석 동제는 ‘서낭제’라고 부르며, ‘여서낭’이 신격을 좌정하고 있다. 제일은 정월 초정일(初丁日)이다.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동제를 지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산짐승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동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좌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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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양식. 영주시는 전통적인 농촌 지역이면서도 벼농사보다 과수 농사가 중심인 곳이다. 해방 이전 한옥이 다수였던 영주시는 1970년대 이후 정부의 마을구조개선사업으로 점차 서구식에 가까운 가옥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영주시에는 대체로 주택과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 한옥의 원형은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과 선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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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과 안정면 사이에 있는 산. 주마산(走馬山)[516.2m]은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와 안정면 여륵리 사이의 봉우리이다. 예천군 감천면부터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의 중앙부에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본래는 나치산 또는 고방산이라고 하였으나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짓는데 세 번이나 전복되므로, 그것을 예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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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양식. 영주시는 전통적인 농촌 지역이면서도 벼농사보다 과수 농사가 중심인 곳이다. 해방 이전 한옥이 다수였던 영주시는 1970년대 이후 정부의 마을구조개선사업으로 점차 서구식에 가까운 가옥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영주시에는 대체로 주택과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 한옥의 원형은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과 선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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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수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 시호는 문민(文敏),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주유(周瑜)가 고려 멸망 이후 합천에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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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수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주세붕의 초상화. 주세붕 초상(周世鵬肖像)은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초상화로 16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주세붕 초상은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에 보관 중이었으나, 현재는 소수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초상의 주인공인 주세붕은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부임하였으며,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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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수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주세붕의 초상화. 주세붕 초상(周世鵬肖像)은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초상화로 16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주세붕 초상은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에 보관 중이었으나, 현재는 소수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초상의 주인공인 주세붕은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부임하였으며,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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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술바위와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술바위」는 영주시 휴천동에 전해오는 사물 전설로 욕심을 부리느라 땅의 좋은 정기인 청룡맥을 끊어버려 망하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청룡맥은 복을 부르는 땅의 맥을 말한다. 서술자의 말을 통해 덕행을 베풀면 복을 받고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는다는 이치를 강조하고 있다.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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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소백산 아래에 있는 계곡. 죽계(竹溪)는 고려 후기 명현이자 문장가인 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의 「죽계별곡(竹溪別曲)」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과 퇴계(退溪) 이황(李滉) 등 조선시대 수많은 선비가 유상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죽계구곡(竹溪九曲)은 그 설정에 있어 두 가지 견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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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죽계구곡문학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문학 동인지. 『죽계구곡문학』은 2000년 창간 이후 매년 발간하는 문학 동인지로, 여기에는 영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죽계구곡문학회 회원들의 작품과 기타 문학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죽계구곡의 이름을 딴 죽계구곡문학회는 그와 같이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려는 취지로 1999년 창립되어, 2000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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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안상(安瑺)[?~?]은 16세기 문신이자 음악행정가였다. 영천군수(榮川郡守) 재임 중에는 이황(李滉)[1501~1570]의 건의로 이산서원(伊山書院)을 건립하였다. 안상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해주목사를 역임한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5세손이 된다. 고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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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형식의 작품. 「죽계별곡(竹溪別曲)」에는 안축(安軸)[1282~1348]이 고향 순흥의 아름다운 산수와 미풍 속에서 흥에 젖어 있는 모습을 읊고 있다.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라는 구절, 혹은 “경기하여(景幾何如)”라는 말이 되풀이되는 것을 따서 ‘경기체가(景幾體歌)’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죽계별곡」은 안축의 문집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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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와 배점리 사이에 있는 저수지. 순흥저수지(順興貯水池)는 한국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 영주봉화지사에서 관리하는 1종 주 수원이다. 순흥저수지는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와 배점리 주변 지역에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순흥저수지는 농업용 저수지로서 1986년 3월 18일 착공하여, 1996년 9월 30일 준공하였다. 한국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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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년 조선 전기 문신 주세붕이 영주 소수서원의 초창기 기록을 엮어 편찬한 서원지. 『죽계지(竹溪誌)』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현 소수서원(紹修書院)]을 건립한 이듬해인 1544년(중종 39)에 백운동서원과 관련된 내용을 엮어 편찬한 책이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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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서 발원하여 창진동에서 서천으로 유입되는 하천. 죽계천(竹溪川)은 경상북도 영주시를 흐르는 유로연장 22.41km, 유역면적 157.55㎢의 지방 2급 하천이다. 죽계천 상류에는 조선시대 이황이 그 절경에 감탄하여 이름 붙인 죽계구곡이 있다. 죽계천 명칭은 하천의 발원지인 죽령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광여도』와 『영남지도』에는 죽계천 일대가 ‘죽계수(竹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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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치묵(安致默)[1826~1867]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안치묵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휴(士休), 호는 죽남(竹南)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응성(安應成), 아버지는 안정진(安廷震),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황기한(黃綺漢)의 딸이다. 안치묵은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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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를 연결하는 고개. 죽령(竹嶺)[689m]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의 대강면 용부원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죽령은 영남지방과 경기 및 호서지방을 연결하는 문경새재, 영동지방의 대관령과 함께 3대 관문 중 하나로 꼽힌다. 죽령에는 조선시대 세조 연간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던 동종이 오대산의 상원사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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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희방사역과 죽령 사이에 위치한 도보여행길. 죽령 옛길은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1999년에 영주시에서 죽령 옛길을 도보여행길로 복원하였고,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명승으로 재지정되었다. 죽령은 158년(아달라왕 5)에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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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간된 조지훈의 시집 『역사 앞에서』에 수록된 죽령전투를 노래한 시. 「죽령 전투」는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시로 1959년 출간된 두 번째 시집 『역사 앞에서』에 수록되어 있다. 조지훈은 민족 참상의 비극인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활동하였다. 시의 배경이 되는 죽령은 영주시 풍기읍에 위치한 고개로 6.25전쟁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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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를 연결하는 터널. 죽령터널은 소백산맥의 죽령 아래를 지나가는 중앙고속도로의 터널이다. 각각 편도 2차로인 춘천 방향 터널과 부산 방향 터널 2개가 나란히 굴착되어 있다. 소백산맥의 죽령(竹嶺) 아래를 통과하여 ‘죽령터널’이라 하였다. 죽령터널은 춘천 방향 터널과 부산 방향 터널 두 개로 구성되었으며, 각 터널의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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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를 연결하는 중앙선 철도의 터널. 죽령터널은 소백산맥의 죽령 아래를 지나가는 중앙선 철도의 터널로 영주시 희방사역과 충청북도 단양군 죽령역 사이에 위치한다. 소백산맥의 죽령(竹嶺) 아래를 통과하여 ‘죽령터널’이라 하였다. 죽령터널의 길이는 4,500m, 폭은 3.9m, 높이는 5.9m이다. 죽령은 소백산맥에 있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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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죽령에 전해오는 동종에 관한 이야기. 「죽령재와 상원사 동종」의 무대가 되는 죽령재는 보통 ‘죽령(竹嶺)’이라 일컬으며, ‘대재’라고도 부른다. 고개의 높이는 689m로 고대부터 많은 사람이 죽령을 넘나들었고, 이와 관련된 많은 설화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또 설화의 소재인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지정된 ‘상원사 동종(上院寺銅鍾)’을 가리킨다. 상원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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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죽지랑과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죽령재와 죽지랑」은 죽지랑(竹旨郞)[죽지(竹旨)]과 관련한 인물 전설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의 배경이 되는 죽령재는 보통 죽령(竹嶺)이라 일컫는데, 해발고도는 689m이다. 「죽령재와 죽지랑」은 여러 설화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의 「효소왕대 죽지랑(孝昭王代竹旨郎)」 편에 수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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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서재승(徐在承)[1876~1915]은 1907년 정미의병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총살당하였다. 서재승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이다. 1876년 11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서 서목렬(徐穆烈)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재승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개하고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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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사맹(李師孟)[1396~?]은 충청도도사·홍문관부제학·병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사맹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학이(學而), 죽선(竹仙)·괴정(槐亭), 시호는 온혜(溫惠)이다. 아버지는 함길도도관찰사를 지낸 이유(李愉)[1365~1423], 어머니는 좌윤을 지낸 안영부(安永孚)[1398~1464]의 딸 정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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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우기(安于器)[1265~1329]는 밀직부사 겸 대사헌, 검교찬성사 등을 지낸 문신으로 아버지 안향(安珦)[1243~1306]을 이어 문재(文才)로 명성이 높았다. 안우기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허중(虛中), 호는 죽옥(竹屋),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할아버지는 주리(州吏)로 의업에 종사하다가 밀직부사에 오른 안부(安孚)이며, 아버지는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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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운(吳澐)[1540~1617]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송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운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율계(栗溪)·백암(白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석복(吳碩福)[1455~1533]으로 만년에 의령현감을 지낸 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정착하게 되면서 함안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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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죽죽(竹竹)은 158년(아달라이사금 5)에 죽령(竹嶺) 개통을 주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설화에는 장군이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 신라본기 제2의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편에는 “5년(158) 봄 3월에 죽령을 열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때 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죽령이 처음 개통되었음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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